한국불교의 일부 승려는 중생제도를 한다는 전제하에 어디서 어디까지가 방편의 수작으로 중생을 기만 하는지 모른다. 아무리 “먹고살기 위한 호구지책(糊口之策)의 방편이라지만, 불성(佛性)이 있는 중생을 기만하며 먹고 살아서는 안된다. 또 스스로 우매(愚昧)하고, 탐욕이 지나쳐 스스로 성불하는 수행의 길을 걷지 않고, 피화구복(避禍求福)의 기복불교(祈福佛敎)로 신불(神佛)을 이용하려 들지 말고, 진리를 구하는 실참불교(實參佛敎)의 길을 걸어야 불교인의 정도(正道)라고 나는 주장하는 바이다.
무엇이 문제의 방편인가? 한국불교의 일부 승려들은 불교를 신앙하고 배우려는 남녀 신도들을 향해 팔만세행(八萬細行)이라는 방편법으로 중생을 인도한다고 전제하면서 중생에게 목적은 재물을 내놓게 하기 위해서 수많은 방편을 들어 현혹하는 데, 깨닫고 보면 방편법은 양파와 비슷하다고 언명할 수 있다. 둥근 양파의 껍질을 벗겨보라. 마지막 순간까지 양파 껍질을 벗겨보면 결국 양파의 실체 내용은 없는 것같이, 방편법은 어디서 어디까지 진실인지 알 수 없고, 공허할 뿐인 것이다.
한국불교에서 시급히 의식의 개혁이 절실한 방편중의 하나는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피화구복(避禍求福)해주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성인으로 만들고 기도비라는 명목으로 헌금하게 하는 방편을 하면서 특별한 장소를 만들어 기도하면 소원이 성취된다고 주술(呪術)같이 중생의 뇌리에 세뇌하고 각인시켜 이용하는 일부 승려들의 교지(狡智)가 큰 문제이다.
이 자들이 가장 많이 쓰는 방편법은 산(山)의 신비(神秘)를 이용한다. 특히 사찰주위에 바위가 병풍처럼 들러 싸여 있거나 역시 바위산 속의 돌부처를 세워 놓고, 그 바위산에 있는 불상에게 기도하면 중생은 “한가지 소원은 이룰 수 있다. 요언(妖言)같은 소문을 경향(京鄕)에 퍼뜨려 중생들이 “한가지 소원을 이루게 된다”는 욕망에서 바위산의 돌부처를 찾아 돈을 집중적으로 바치게 하고, 은근슬쩍 돌부처 앞에 수북히 쌓인 불전(佛錢)만을 챙겨 졸부(猝富)가 되는 짓을 상습하는 것이다.
바위산의 돌부처 앞에 중생이 “한가지 소원을 이룬다”는 교활한 승려의 방편법문을 맹신하여 불전(佛錢)을 바치면 불전 훔쳐 졸부가 된 일부 승려들의 일부는 상부에 공식적으로 분담금(分擔金)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내고, 일부는 사찰운영에 쓰고, 나머지는 개인이 사복(私腹)을 채우다가 대부분 환속하여 처자(妻子)와 함께 불교를 떠나는 수순(隨順)이 비일비재(非一非再)이다. 어찌보면 힝령한 불전은 은처(隱妻)의 부양비에 바친다. 일부 승려는 돈을 훔쳐 국내는 물론 해외에 까지 도박원정을 하고, 쌍둥이 아빠노릇을 한다는 지탄을 받기도 한다. 도대체 청정한 독신종단인 조계종 정문 앞에 “쌍둥이 아빠 물러나라의 ” 현수막과 서울대 교수들 등의 불자들의 항의시위는 무슨 뜻인가?
이 글을 읽는 독자 제현이 해인사에 봉안된 석가모니불의 말씀이라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다 찾아 통독해보라. 어느 경(經)에 바위산과 돌부처에만 불전을 바치고 기도하면 반드시 “한 가지 소원은 이룰 수 있다”고 적시(摘示)하셨는가? 알고 보면 부처님의 진리는 없고, 중생을 기만하여 재물을 구하겠다는 사기한(詐欺漢)적인 일부 승려가 사기의 주술을 걸고 있을 뿐이다.
나는 그동안 대한불교 조계종 승려로써 4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운 좋게도 세 분의 종정스님을 가까이 모시고 심부름을 하는 직책에 있어 보았다. 고암(古庵)종정, 성철(性徹)종정, 월하(月下)종정 대종사들이다. 그분들은 일평생 무소유의 수행자로 계셨다. 또, 그분들은 일평생 중생을 만나 깨달음의 법문을 주실 때, 부처님같이 일체중생(一切주衆生)이 실유불성(悉有佛性)하다고 전제하고, “석가모니불같이 수행하면 모두 부처를 이룰 수 있다.”고 마음공부와 수행을 간절히 권장하면서 중생을 위해 헌신봉사할 것을 권징했었지, 바위산 돌부처나 특별한 기도장에 가서 불전놓고, 기도하면 “한가지 소원은 이룰 수 있다”고 말씀하지 않았다고 나는 증언한다.
내가 그동안 40여 년 한국불교계를 관찰해오면서 절감되는 것은 부처님의 진리를 전해주는 진실한 제자는 태부족하고, 부처팔아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삼아 어디서, 어디까지가 방편인지 일 수 없는 기만술로 진리에 목말라 있는 선량한 남녀 불자들을 오도(誤導)하여 오직 재물만 화두로 삼아 탐욕을 부리는 승려들은 부지기수(不知其數)라는 것이다. .
일부 승려들은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주제로 설법은 잘하면서 속내는 중생을 기만하여 돈을 내놇게 하기 위해서는 교활한 방편술을 부려오는 데, 속세의 부귀영화를 헌신짝 버리듯 떠난 부처님에게 “한가지 소원은 돈인데 돈을 달라“고 붙잡고 늘어지듯 졸라대는 기도를 과연 석가모니불이 살아계신다면 무어라 하실까?
내가 이 글을 애써 욕먹을 각오로 쓰는 이유중의 하나는 어느 바위산, 돌부처 또는 고찰의 신비한 곳만이 부처의 영험과 자비가 존재할 뿐이요, 포교당 등 역사가 짧은 사암(寺庵)에는 기도해 봤자, “한 가지 소원은 이룰 수 없다”고 주술을 걸어대는 추잡한 상행위(商行爲)같은 짓을 하는 일부 승려들을 질타하고, 부처님의 기도장은 역사가 짧은 사암은 물론 포교당과 자신이 살고 있는 집안이 기도장이요, 이 세상 처처가 기도장이요,수행도량이라는 것을 중생들에게 대오각성(大悟覺醒)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처처불상(處處佛像)이요, 사사불공(事事佛供)이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가진 불교인이 진실한 불자라는 것을 나는 거듭 강조하는 바이다.
고해대중은 불교를 믿는 이유가 피화구복(避禍求福)을 위해서만 기도해서는 안된다고 나는 거듭 주장한다. 진짜 불교를 신앙하고 마음공부의 수행을 한다면, 내가 지은 업(業)따라 만사만생(萬死萬生)하는 윤회의 고통에서 해탈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어찌 한국불교에만 기복불교의 병통이 존재하겠는가? 여타 한국종교계의 일부도 전능한 신(神)을 팔아 중생의 돈을 수입잡고 한 번도 보지도 못한 천당, 지옥, 각종 신(神)을 들먹이며 중생의 돈에 탐욕한다. 개(犬)도 방언을 하는 신령한 기도장에서 “전능한 유일신에게 울며 통회하며 복받자.”며 헌금을 수입잡는 자들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종교계에 더 무서운 병통은 은근슬쩍 한국종교계를 숙주(宿主)로 이용하기 위해 모든 종교를 말살하려는 북을 추종하는 붉은 종교인들이 득시글 맹활약을 한다는 점이다. 붉은 종교인은 모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한민국의 큰 우환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모든 올바른 종교인은 첫째, 종교를 이용하여 졸부가 되려는 도적(圖籍)들을 축출해야 하고, 둘째, 종교계를 종북주의자의 숙주로 삼는 김일성교(敎)의 붉은 마도(魔徒)들을 축출하는 데 앞장 서야 할 것이다. ◇
이법철(이법철의 논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