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6일 부터 봉은사에서 백고좌 법회가 봉행되었다
-일정: 2023년 3월 26일 부터 매월 2, 3, 4, 5주 일요일 / 오전 11시 ~ 2025년 11월 16일(일) 총 100회
백고좌법석(百高座法席)은 사자좌(獅子座) 100자리를 만들고 고승 100명을 초청해 설법을 듣는 법회로,
국가의 내란과 외우 등을 없애려는 목적으로 개설되었다.
『인왕경』에 의지하는 법회이기 때문에 인왕도량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백고좌법석은 『작법절차』에 따라 행해졌는데,
100명의 법사를 청해 하루에 2회씩 경전을 강설하고 염송하는 것이 핵심이다.
신라시대인 551년(신라 진흥왕 12)에 승통(僧統)인 혜량(惠亮)에 의해 처음으로 개설된 이래,
불교를 숭상한 고려시대에는 천변지괴를 물리치려는 목적으로 100회 이상 개최되었다.
인왕도량으로 개최된 고려시대의 백고좌법석은
‘호법이 곧 호국[護法則護國]’이라는 사상에 근거해 밀교식 소재도량으로 시행된 대표적인 국가 행사였다.
그러나 억불숭유를 정책 기조로 삼은 조선시대에는 개설된 예가 보이지 않는다.
삼국에서 열었던 불교 법회는 백고좌회와 팔관회로부터 시작되었다. 551년 고구려 승 혜량이 거칠부를 따라 신라로 왔는데 진흥왕은 혜량을 승통으로 삼고 처음으로 백좌강회(百座講會)와 팔관지법(八關之法)을 설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고구려에서도 이러한 법회를 설행하고 있었을 것이다.
백좌강회란 인왕백고좌회(仁王百高座會)로 100명의 고승을 청하여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을 강설하는 법회를 말한다.
곧, 전란 등으로 나라가 위태로울 때 불보살의 상을 모시고 대중이 함께 100명의 법사를 청하여 반야바라밀다의 강설을 듣고 공양하면, 국토에 있는 100부 귀신과 그 권속이 경을 듣고자 국토를 수호해 줄 것이라는
『인왕반야경』의 내용에 근거한다.
“반야바라밀다는 국토를 수호한다.”고 하는 반야의 궁극 목적은 중생 세계를 청정하고 안락한 진리의 세계로 전환하려는 데 있으며
보살은 그 종교적 목적을 위해 수행하는 자이고 국왕은 그것을 정치 이념으로 삼는다.
그래서 『인왕경』에 윤왕과 천왕이 보살의 수행 계위에 배치되어 있다.
신라에서는 백고좌회를 처음 진흥왕이 설행한
이래 613년(진평왕 35) 수나라 사신이 왔을 때에도 황룡사에 백고좌회를 설하고 원광에게 경을 강설하게 하였다.
636년 선덕여왕이 병들자 황룡사에서 백고좌를 설하여 『인왕경』을 강설하고 100명을 승려로 출가하게 하여 치료하였다. 왕의 질병에도 백고좌를 설행한 것은 호국뿐만 아니라 복을 지키고 어려운 일에도 이 경을 강하라는 『인왕경』의 내용에 따른 것이었다. 백고좌회는 황룡사에서 행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통일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팔관지법은 팔관재(八關齋)를 말한다.
팔관재는 불교의 계율에 입각한 의례로서 재가인들에게 한 달에 엿새만이라도 청정하게 팔계를 지킬 것을 권하는 것이다.
팔계는 불살생(不殺生)·불투도(不偸盜)·불사음(不邪淫)·불망어(不妄語)·불음주(不飮酒) 등 여덟 가지 계율을 말한다.
육재일(六齋日)은 본디 인도 전래의 풍습에 악귀가 사람을 쫓아다니며 목숨을 빼앗고 다치게 하는 불길한 날이므로 이날이 돌아오면 목욕하고 단식하며 선행을 하여 불길함을 피하고자 하였던 것인데,
그 풍습이 불교에 들어와 재가인들이 팔계를 지키는 날이 되었다고 한다.
팔관재를 지키면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지 않고 불법을 배워 미륵회상에서 만난다는 등의 큰 공덕이 설해져 있다. 이 때문에 원시 불교 이래로 팔관재가 널리 행해졌다.
또 팔관재에서는 사천왕이 인간 세계를 관찰하여81)
8일·23일은 사자를 내려 보내고
14일·29일은 태자를 내려 보내고
15일·30일은 사천왕이 직접 관찰한다고 한다.
제석천에 보고하는데,
제석천은 인간이 선행과 지계에 힘쓰고 있다고 하면 아수라중(阿修羅衆)이 감소하고 천중(天衆)이 증가할 것이라고 크게 기뻐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심히 걱정한다고 한다.
곧, 제석천을 기쁘게 하는 법회가 팔관재였다.
혜량이 처음 설치한 팔관지법은
572년(진흥왕 33)에 전쟁에서 사망한 병졸을 위해 팔관회를 설하여 이레 만에 파하였다고 전한다.
날짜와 설치 목적이 불교 본래의 팔관재와는 달리 전사자의 명복을 비는 법회로 성격이 바뀌어 있다.
이것은 제석천에 대한 신앙과 연결되어 전사자의 생천(生天)을 비는 뜻으로 보이며,
궁극적으로는 미륵 신앙과 연결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팔관재는 중국 북조에서 위령제로 설행되었고 남조에서는 미륵 신앙과 관련되어 유행하고 있었다.82)
신종원, 『신라 초기 불교사 연구』, 민족사, 1992, 196∼197쪽.
신라의 팔관회는
망자 추선을 첫 번째 목적으로 하는 남조의 팔관재가 모델이었다고 한다.
고구려에서 설행되던 위령제 성격의 팔관재가 신라로 전해진 것으로 여겨진다.
후일 고려에서 팔관회는 연등회와 함께 태조의 훈요 10조(訓要十條)에 언급되어 국가적으로 행해졌다.
팔관회는 ‘천령(天靈)과 오악(五嶽)·명산(名山)·대천(大川)·용신(龍神)을 섬기고자 하는 것’이었고
‘부처를 공양하고 신을 즐겁게 하는 모임(供佛樂神之會)’으로 나타나 있다.
곧, 부처와 신령을 함께 섬기는 성격의 법회로 계승되고 있었다.
인왕백고좌회는 부처와 불법을 받들어 국가 수호를 비는 의례로서 불교 수용 이전의 제천 대회(祭天大會)와 같은 성격으로도 볼 수 있다.
팔관회는 전사자의 명복을 비는 법회로서 전통 신앙과 습합되어 행해졌고
궁극적으로는 미륵 신앙에 연결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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