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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소식

한국의 불교인들이 종북좌파에게 추종 협력하는 이유

한국의 불교인들이 종북좌파에게 추종 협력하는 이유




한국의 불교인들은 김정일정권이 처음부터 반불교적 정치노선을 취해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다. 그러기에 조계종을 비롯한 각 종단대표들이 상위국에 대한 배알의 예를 올리기나 하듯이 매년 거르지 않고 평양방문을 계속해 온 것이 아닌지?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연례적인 방북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을 것인가? 남한 불교지도자들은 종북좌파세력의 반불교(중생병?) 환자들에 대하여 치료나 선도가 아닌 종속과 순종의 태도를 유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아야겠다.

미국쇠고기수입반대 촛불시위와 한미FTA반대 투쟁 등으로 나라의 기강이 완전히 무너져 버린 상태이다. 한국의 금강산 관광객이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살 당하는 비극도 해결의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기회를 잡았는지 일본인들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나섰다. 그래서 한국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미국도 종래의 중립적인 입장에서 일본측을 두둔하는 방향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그러니 한국의 국제적인 체면도 땅에 떨어지며 여기저기서 발길로 차이고 망신당하느라 바쁜 신세로 전락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가 MB정권이 들어서면서 연속 일어나고 있으니 MB정권은 언제 정부노릇을 제대로 하게 될 것인지 그 앞길이 어둡고 막막한 상태이다. 이렇게 볼 상 사나운 일들이 왜 MB정권의 초기부터 계속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이런 사건의 발단은 MB정권이 남한의 종북좌파세력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데서 일어나게 된 현상이다. 종북좌파세력을 다스리며 시정하려는 자세가 아니라 그들에게 안기며 아양을 떨려고 하다가 당한 푸대접이며 또 망신살이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거의 2000년의 역사에다가 2000만의 신도를 가진 불교인들을 통솔한다고 자부하는 한국의 조계종과 기타 종단은 어쩌자고 북의 김정일정권의 후원을 받는 것으로 추정되는 종북좌파세력들에 의하여 장악되어버린 것일까? 한국의 불교집단이 그 정도의 역사와 영향력을 가졌다면 남북한의 반불교적인 좌파세력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파헤쳐 가르치며 선도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남북한의 공산주의 내지 좌파세력들이 주장해온 정치사상과 노선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검토해 보라. 우리는 여기서 어김없이 지독할 정도로 貪瞋痴(탐진치) 3독에 찌들려온 정치적 편견 또는 악견의 큰 뭉치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衆生煩惱(중생번뇌)의 극치를 다스리고 치유해주지 못해 온 것이 불교라면 한국의 불교와 그 사상은 무엇을 위해 존재해 왔으며 또 어디서 그 자랑스러운 애국적인 위상을 되찾을 수가 있겠는가?


탐진치의 좌파이데올로기

나는 여기서 남북한 좌파세력의 정치사상이나 노선이 불교가 치유해야 할 중생들의 정신질환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불교가 제일 먼저 경계하는 탐진치 중의 貪(탐)이란 인간의 욕망 중에 부적절하거나 정당화될 수가 없는 빗나간 욕망을 말함이다.

욕망은 보통 삶의 動因(동인)으로 간주되는데 욕망에는 가져도 되는 욕심과 가져서 안 되는 욕심이 있다. 貪心(탐심)은 가져서 안되는 욕심, 도를 넘어서 정당화되기 어려운 욕심을 말함이다. 공산주의자들이 갖는 탐심이란 어떤 것인가?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들은 富裕(부유)계층, 權力(권력)계층, 자본가계급이나 그 주변의 관리 내지 부수계층을 불신하고 미워하면서 그들의 재산을 탈취하거나 통제함으로써 노동자나 농민계층 또는 도시에 사는 근로자계층 내지 도시빈민의 편에 서서 투쟁하는 사람들이다.

공산주의자들이나 좌파지식인들은 富裕(부유)계층이나 정부고위층 또는 사회명사들이 모두 不正(부정)한 수단으로 치부하였으며 부당하게 그들의 특권과 호강을 누려왔음을 전제한다. 그래서 그들 재산을 몰수하여 빈민계층에게 분배해 주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으로 正義와 거리가 먼 反正義라고 판단하는 측에서 보면 그런 사상이나 운동은 올바르지 못한 貪心(탐심)의 所産(소산)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러한 좌파지식인들의 貪心은 불교가 말하는 身業(신업)인 殺盜淫(살도음)의 의도에 의하여 밑받침 된다. 물론 좌파지식인들의 행위는 淫亂(음란)과는 거리가 먼 것이나 殺生(살생)과 盜(도)는 정신적인 음행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공산주의자나 좌파지식인들의 정의감은 물론 나라나 지역에 따라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믿음의 소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사실의 과장이나 왜곡에 의한 잘못된 판단이며 사견(邪見)이므로 그들의 사상과 행동은 탐심에 의하여 발생하고 지속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좌파이론과 사상을 밑받침하는 또 하나의 정신적 요인이 嗔心(진심)이다. 남들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해악의 정신으로 보복하려는 정신이다. 사람들이 남들(지배계급)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악행 권리침해 내지 정신적인 타격이나 상처에 대하여 화내거나 역정, 짜증을 냄이 당연하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그런 해약행위를 忍辱(인욕)으로 받아들이도록 권장하며 보복행위를 할 것을 금지한다. 또한 모든 외부의 害惡(해악)이나 손상행위를 前生(전생)과 今生(금생)에 지었던 자신의 惡業(악업)에 대한 보상으로 받아들일 것을 가르친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이나 좌파세력들은 계급의 敵(적)에 대하여 무자비한 투쟁을 강조하여 폭력수단을 삼가하지 말도록 지시한다. 그들은 언제나 민중에 대한 선전 선동을 중요시하며 거짓이나 기만의 수단도 삼가는 일이 없다. 그들은 목적은 어떤 수단이라도 가리지 않으며 합리화한다는 레닌의 말을 즐겨 인용한다. 그리고 목적달성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마귀들과의 대립이나 싸움을 기피하듯이 그들과의 대립이나 충돌을 겁내어 회피하려고 드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나 좌파이론가들의 사상과 행동을 밑받침하는 또 하나의 정신적인 오인은 癡心(치심), 곧 어리석음이다. 공산주의자들이나 좌파사상가들은 대체로 뛰어난 지능의 소유자들이 적지 않다. 특히 左腦(좌뇌)활동이 잘 발달한 편이므로 어리석다는 말이 적절치 못할 수가 있지만 지나침은 모자람만도 못하다는 말처럼 머리 활동이 너무 과함으로써 도리어 너무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되기가 십상이다.

이들의 어리석음은 어디서 오나? 첫째는 인과관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음으로 인하여 오게 된다. 富者(부자)와 貧者(빈자)가 갈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부자는 운이 좋고 능력이 있는 사람의 보호를 받거나 동업할 때 부자 노릇을 하며 살 수가 있다. 반면에 貧者(빈자)는 운이 좋지 못하거나 능력이 뒤지는 사람들과 한 패를 이루어 살게 될 때 가난해지기가 쉽다. 물론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이나 재산을 빼앗아서 부자가 되는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는 능력과 의욕의 부족과 생활자세에서 오는 것이다.

사람들이 물가에서 고기를 잡는데 어떤 사람은 열 마리를 잡았는데 어떤 사람은 작은 생선 한두 마리밖에 못 잡았다고 하자. 그러면 고기를 많이 잡은 사람이 못 잡은 사람의 물고기를 수탈한 때문이라고 말하겠는가? 이런 경우에도 열 마리를 잡은 사람을 비난하며 벌주어야 하느냐? 아니면 못 잡은 사람이 많이 잡은 사람의 환심을 사는 방법으로 잡은 물고기를 나누어 주도록 유도하겠는가? 많이 잡은 사람을 벌주는 경우 잘 잡는 사람들은 자신이 먹을 물고기만 잡고 그 자리를 떠버릴 수가 있다. 그렇다고 못잡은 사람이 고기를 더 많이 잡는다는 보장이 없다.

보통 능력이나 업무실적이 뒤지는 사람들이 앞서 가는 사람들을 시기 질투하고 미워하며 그 소득과 명예를 빼앗으려고 드는 것이 사회주의적 사고경향이다. 그러나 事理(사리)를 아는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이것은 판단착오 내지 어리석음일 뿐 지혜로운 행위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사회배경이나 품위 그리고 능력이 훨씬 뒤지는 사람들이 자리 욕심이나 명예심이 더 많을 수가 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 자리에 올라서 그 집단의 의사결정권을 장악하려고 든다. 이것이 공산주의자들이 즐겨 하는 행동방법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며 좌파지식인들 중에 이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이런 집단생활이 평화롭고 관리가 잘 되어가기는 바라기가 어려운 일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관리가 잘 안되는 원인이 이런 데 있다고 보아진다.

둘째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모르는 사람들일수록 정반대로 남들보다도 우월하다는 착각을 가짐으로 어리석음이 더해진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마르크스의 사상을 공부해서 아는데 남들은 거의 모른다. 자신은 유물변증법을 공부하여 역사의 변화법칙을 아는데 남들은 말해 주어도 그 뜻을 모른다. 그러므로 자신은 현명하지만 남들 특히 보수반동은 무지하다. 사실은 마르크스의 이론은 크게 잘못되어 있는 이론이므로 아는 것이 모르는 것만도 못한 것인데 좌파지식인들은 반대로 지나친 우월감을 가지고 있으며 남들을 지배하려고드니 救濟(구제)가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無知(무지)와 근거없는 우월감으로 인하여 매사에 집착과 고집이 남달리 강하다. 그들의 잘못된 선입견과 고정관념으로 인하여 올바른 지식이나 정보가 들어가도 그들은 일체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속담에 독을 마셨으면 그 그릇까지 먹어치우라는 말이 있다. 마신 것이 독약임을 알았으면 빨리 중단해서 입과 위장을 씻어낼 조치를 취할 일이지 기왕 마셨으니 끝까지 모두 마시자는 것은 어리석음도 너무나 심한 경우이다.

셋째는 어리석은 사람들일수록 개방적이 아니라 폐쇄적이어서 자신과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위를 용납하거나 진지하게 검토하고 시험해 보려는 생각이 없다. 남들의 비판을 받아들이며 異見(이견)을 허용하지 않는데 그치지 않고 그런 사람들을 제거 숙청함을 주저하지 않는 등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가 일쑤이다.

그들에게도 비판과 자기비판이라는 관습은 있다. 그러나 그들의 비판은 공산주의와 그 수령을 무조건 믿고 실천하기를 주저하는 과오, 계급의 적을 더 철저하게 미워하고 투쟁을 하지 않는 행위에 대한 비판에 국한되어 있다. 그들도 민주주의를 들먹이며 또 인민재판이라는 제도를 이용한다. 누구는 반동이며 반민족이므로 쳐죽여야 한다고 당이 주장하면 그런 논고에 대하여 반대하거나 피고에게 유리한 발언을 하는 사람이 없다. 당의 주도권자에게 옳소 하는 소리밖에 발언하지 못하는 공포분위기하에서 재판이라는 제도는 있으나마나 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공산주의 사회의 독선과 사상적인 횡포는 시정될 수가 없으니 이 보다도 더한 어리석음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보수우익세력의 정치이데올로기와 비교해 본다면

위에서 우리는 혁신좌익세력의 정치이데올로기에 공통된 결함이나 단점을 지적하였다. 그러면 그와 대립하는 보수우익세력의 정치이데올로기는 어떠한가? 좌익세력의 이데올로기가 갖는 貪心(탐심), 嗔心(진심), 癡心(치심)을 보수우익세력은 전혀 갖지 않는다고 말할 수가 있는가?

보통 사람들은 흔히 ‘똑같은 사람들이 싸운다’는 말이 있듯이 보수우익세력도 그러한 결함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보수우익세력이 좌파세력들과 전혀 다른 특징(特徵)을 말하자면 無貪心(무탐심), 곧 보시의 정신. 無嗔心(무진심), 말하자면 慈悲(자비)의 정신. 無愚癡心(무우치심), 곧 지혜로움을 가지면 친 좌파의 이데올로기와 좋은 대조(對照)가 될 수가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보수우파나 혁신좌파나 난형난제(難兄難弟)라고 할 정도로 비슷하며 친북좌파보다도 훨씬 더 우수하다는 장점을 발견하기가 어려운 것이 문제이다.

다만 다음과 같은 점에서는 보수우파는 혁신좌파보다도 상대적으로 양호한 비교 우위에 있다고 하겠다. 첫째는 탐진치 三毒으로 인하여 오염되고 일그러진 정치적인 惡見(악견)과 불신감정의 문제가 좌파집단처럼 심하지 않다. 정치적인 악견이나 불신감정 또는 我慢(아만)과 독선은 보수우파라해서 없는 것은 아니나 이런 점에서는 보수우파들이 조금은 덜 한 편이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 혁신좌파의 독선과 불신 그리고 악견=과격사상이 두드러지게 심한데 비하여 보수우파들의 내부에서는 분분하고 대립하는 異見에 비교적 열려있음으로써 아만 독선이나 정치적인 악견이 어느 정도나마 완화된다. 반면에 혁신 좌파들의 내부에서는 주류의 주장에 이의를 달거나 반대할 수가 없기 때문에 惡見이 자체적으로 극복 불식될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불교계의 친북협력활동의 평가

위와 같은 논거를 참조하면서 한국의 불교계의 친좌파성향을 다시 검토해 보자. 한국의 불교계가 어느 정도로 친북화되어 있으며 또 얼마나 깊이 좌파의 활동에 동조 내지 협조하려는 것인가? 필자의 소견으로는 대부분의 불교인들은 좌우파간의 정치대립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으며 북한에 대해서도 적대감이 없다. 또 어느 정도의 동포애는 가질망정 김정일정권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도 애정도 갖지 않는다. 그런데 불교계에 잠입해 있는 일부 좌경세력이 불교인의 정치적인 무관심을 기화로 자의로 불교계의 이름을 그들의 친북활동에 끌어들여서 이용함을 허용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런데 지난번 천주교사제단에 이어서 불교계가 다시 꺼져가는 촛불시위에 불을 당기며 좌파들의 정치투쟁에 가담하는 일을 벌였다. 나는 한국불교계가 한국의 좌우정치세력에 대하여 대국적인 견지에서 지도 교시하는 것은 환영한다. 그러나 그들의 사주나 선동에 놀아나서 지각없는 행위를 계속하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다. 천주교회신도들은 곧 그것이 準主敎徒(준주교도)의 의사가 아니라는 전단광고를 냈다. 그러나 불교측에서는 그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어떤 집단이 정치적 목적으로 불교의 이름을 도용하는 경우에는 침묵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정당한 의사표시를 해야 한다. 국민대중에게 혼돈과 혼란을 주거나 오도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공산주의나 좌파정치세력은 교육의 대상이지 한국불교의 추종 지지대상이 아님을 확실히 해야 할 때이다. ◇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