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좌파 문화예술인들은 시국토론회와 철야농성을 통해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등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날 문화예술인들이 채택한 결의안 중에는 ‘민족자주권 회복을 위한 이 운동을 좌익용공으로 매도하려는 어떤 음모나 작태도 용납하지 않는다’, ‘문화예술인들은 작품활동과 문화예술활동을 통해 이번 사건의 진실과 미국의 실체를 규명하고, 민족자주권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는 대목이 있다.
선거판의 한 가운데서, 예술을 정치 선전과 대중선동의 도구로 이용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 행사 주도자의 하나로 국악계를 대표해 참가한 인사가 김철호 현 국악원장이다. 김 원장은 1989년 민예총(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산하 민음협 이사로 민예총과 인연을 맺었으며, 1989년 민음협 이사장에 취임했다.
김철호 위원장은 취임당시 전 국악계의 반발 속에 코드인사의 보은에 따라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화제를 모았다. 국악원장 후보 심사 이틀 전 심사위원 4명이 갑자기 교체된 것이 문제의 시발이다. 당초 심사위원 위촉을 받았던 인사들 중 이성림 예총 이사장, 이영희 국악협회 이사장, 안숙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백대웅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 4명이 심사위원에서 빠지고 비 국악인이 심사위원에 임명되는 희대의 사건이 일어났다. 문화관광부 내부에서조차 ‘특정인을 원장에 앉히려는 의도’라는 비판이 일었을 만큼 무리한 밀어붙이기였다. 이에 대해 전국 대학 국악과 교수포럼은 “국악원장의 불공정 임용을 거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국악계 원로들은 국악원장 취임식 참석을 거부 했다. 보수적인 국악계에선 그야말로 큰 파장이었다.
이렇듯 국악계의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자 중앙인사위도 국악원장 최종 후보를 결정하려던 당초 계획을 미뤄 논란에 대한 진상 파악에 먼저 착수키로 했다. 중앙인사위 인사심사과 박창수 과장은 “국악원장 선임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어 실제 심사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정확한 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며 “심사를 처음부터 다시 실시해야 할지 등의 여부는 진상을 일단 파악한 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철호 위원장의 취임과 연임에 대해 문화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민예총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은 “새 정부에서는 예총같은 기득권 세력이 발을 못 붙이게 하고 민예총 등 진보세력을 전진 배치해 개혁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죽하면 이러한 행태를 보다 못해 “후안무치 인사의 극치”라며 “인민군이 남한을 무력 점령하더라도 민심 수습을 염두에 둔다면 이처럼 무모하고 안하무인식 인사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정진수 성균관대 교수)이 터져 나왔겠는가.
국악계가 김철호 위원장의 ‘임명강행’에 반발한 이유는 간단하다. 좌파적 정치활동을 기준으로 뽑는다면 몰라도, 예술적 성취에 관한 한 김철호 위원장은 별다른 업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술행정가나 경영자로, 창작인으로 혹은 학자나 이론가로도 이렇다 할 성취가 없었던 것이다. 다만 하나, 독립신문은 김철호 체제의 국립국악원이 지난 5년 간 ‘남북교류’의 총량을 늘렸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다만, 우리 쪽에서 공연비와 무대제작비와 출연료와 그 밖의 기타 경비 전액을 모두 부담하는 ‘퍼주기식 행사’ 이외에 어떤 문화교류가 더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독립신문은 이에 덧붙여, 그 간의 ‘퍼주기식 행사’의 행사진행비가 어떤 항목으로 언제 어떻게 얼마나 집행되었는지를 꼼꼼히 따져보는 일도 필요하다고 새 정부 당국자들에게 건의하는 바이다.
[김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