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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소식

전여옥 일본은 없다 표절누명 벗겨져?!

강재천 민주화보상법개정안통과추진본부장

17일 전여옥 의원의 ‘일본은 없다’와 관련된 유재순씨와의 재판과 관련하여 조선일보 보도에 의하면 2007년 “지난 2007년 1심에서 표절 판결이 난 이래 2년여 동안 진행돼온 2심 재판에서 법원이 화해를 시도했으나 불발돼 법원은 근일 판결을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2007년 1심 판결에 의하면 "전 의원이 원고 일부를 일본에서 친하게 지내던 유재순씨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무단으로 인용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전여옥 의원이 유재순씨를 포함한 5명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하여 기각 결정을 내린바 있다.

필자는 1심 판결문을 검토하면서 의문점을 제기한 바 있다. ‘인용으로 용인된다’는 결정문을 내리면서 소의 기각을 한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기사나 타인의 글을 일반적으로 비일비재한 인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표절과 인용은 전혀 다른 성격인 것이다.

필자는 판사의 지적능력을 지적하면서 ‘인용으로 용인된다’라고 결정했으면, ‘인용은 표절이 아니기 때문에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리는 것이 이치에 맞다’고 했다. 애당초 유재순과 피고들은 ‘표절의 대한 의혹’을 재기하면서 무차별적으로 사회와 언론을 통해 전여옥 의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사적인 통화기록까지 언론에 공개하면서 의도적인 명예훼손을 자행했다는 점이다.

항소심에서 재판부인 서울고법 민사13부(재판장 여상훈)는 "전 의원이 저작권법상의 저작권은 침해한 사실이 없다는 것을 언론보도를 통해 밝힌다"는 내용으로 강제조정안을 제시했다고 16일 밝혔다. 이 조정권고안은 1심 판결을 뒤집는 내용인 것이다. ‘저작권은 침해한 사실이 없다’라는 내용을 명시적으로 밝히면서 권고안을 낸 것이다.

또한, 전여옥 의원은 "저작권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정정보도를 해주면 응할 의사가 있다"고 재판부에 밝혔고, 유재순측은 "표절당해 1차 피해를 보고, 소송에 돈과 시간을 허비해서 2차 피해를 보았다"며 조정안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유재순씨는 아직도 출판되지도 않은 자신의 글을 표절로 몰고 가는 그런 착오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권고문에서도 나온 내용이지만, 전여옥 의원의 ‘일본은 없다’에 대한 표절의혹은 사실상 벗겨진 것이다. 민사소송에서 일부승소가 되었던 표절에 대한 그동안의 의혹은 벗겨질 것이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아직 있다.

오연호, 정운현, 박철현, 김동열등 유재순과 함께 ‘전여옥 죽이기’에 나섰던 인물들에 대한 단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나마, 민사 소송에서 합의 권고안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 전여옥 의원은 더 이상의 관용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마이 등의 악의적인 행태에 대한 형사처벌이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09.11.17. [강재천 민주화보상법개정안통과추진본부장: http://cafe.daum.net/chunyuok-okok]


필자가 쓴 표절과 관련된 글 일부입니다.
눈귀를 막았으니 듣지도 않겠지만...

필자도 한때는 전여옥의원의 표절시비가 불거졌을 때, 공당의 대변인으서 마뜩한 인물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출간된 지 10년이 넘은 시점에, 대변인으로서 맹활약을 하고 있던 시점에, 거의 일방적일 정도의 언론보도를 보면서 뭔가 잘못알고 있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전여옥표절시비’에 대한 시대적 배경 등 전후좌우를 살펴보면서 어떤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16년 이상이나 지난 책에 대한 논쟁이 법원 항고심에서 어정쩡한 판결문으로 법적으로 결론이 났고, 대법원까지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법의 잣대가 ‘반드시 맞다’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1. 사람은 진화합니다. 전여옥도 진화했습니다.

전의원은 한나라당에 입당하기 전에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넘쳐나는 논객을 자처하면서 입심과 필력을 맹렬히 겨루던 시점이었습니다. 당시 전의원은 햇볕정책을 옹호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그런 발언도 했었습니다. 필자 또한 유신독재를 거치면서 자연스레 진보성향을 가졌던 적이 있듯이 동시대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자연스런 모습이었습니다.

한나라당에 입당하면서 전의원은 이미-요즘은 좌파라고 일컷는- 진보진영의 제거해야할 주요 타킷으로 등장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좌파진영은 전의원의 세치 혀에 아수라장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인큐베이트에서 10달을 채워야 한다’는 말 등 좌파의 1등 토론가인 유시민 전의원의 말문을 틀어막는 활동을 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표를 보좌하면서 각종 선거에서의 전의원의 활약은 단연 군계일학이었습니다. 좌파진영은 놓친 고기가 더 크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고, 상대하려니 논리나 입담에서 딸리고, 토론에 초대되는 경우에 상대 패널이 전의원이면 일단은 선수등록을 고사해버리는 그런 비겁한 모습도 보이곤 하던 때였습니다.

2. 표적을 제거하는 것은 정치인의 조건반사적인 행동입니다.

우리가 지겹도록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상생’. 참 좋은 말입니다. 서로가 Win and Win 하자는 말입니다. 그러나, 정치현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이상과 현실은 반대로 나타나는 일이 다반수이니, 좌파진영의 전의원 제거는 자연스런 현상이며, 그렇게 10년 만에 ‘표절’이라는 낙인을 찍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지 않았나 생각되어 집니다.

전의원이 지목한 피고들의 면면을 살펴보겠습니다. 대표적인 오마이뉴스의 당시 오연호 사장, 정운현 편집국장, 일본에서 유재순의 인터뷰기사를 게재한 박철현기자, 그리고 거짓과 선동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서프라이즈 논객이었던 김동렬 등 다섯 명이었습니다. 서프라이즈에서 소송비용을 모금을 하는 등 전의원을 침몰시키기 위한 발악은 당시 논객이었으면 천하가 아는 일이었습니다.

필자가 한때 글을 습작하던 시절에 같은 동인지 회원도 있고, 서프에서 치열하게 다툼을 한 사람도 있지만, 개인적인 사적인 일은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그들에게 개인적인 감상은 미친개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꼴이 될 수도 있으니 생략합니다. 자, 이쯤에서 한번 생각해 볼까요?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안 이상하면 그것이 더 이상할 것입니다.

3. 참 멍청한 전의원의 대응이었습니다.

필자가 다툼을 지켜보면서 느낀 점입니다. 조직적(?)으로 덤벼드는, 악의를 가진 사람들에게 참으로 순진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멍청하다고 해야 할까, 물론 초선으로서 정치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정치의 더러운 속성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유재순과 통화하면서 부부가 왜 돌아가며 욕설을 했는지, 간교한 이들이 그 통화내역을 녹음하지 않을 것으로, 사적인 통신 비밀을 지켜줄 것으로 판단할 만큼 멍청했다는 것입니다.

유재순은 통신법을 위반하면서까지 그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당시, 본질보다는 인격적으로 전의원을 매도하고, 무자비할 정도로 매도당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좌파진영과 손을 잡은 ‘유재순은 전의원의 도덕성을 따지기 전에 자신의 도덕성을 따져야 한다’는 당시 필자의 글은 서프에서 해우소로 직행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더 한심한 것은 이미 지난 10년 전의 일이었지만, 자신은 결백하다고 목소리만 높일 것이 아니라, 소송에 대한 철저한 준비부족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법이 늘 정의와 진실의 편이라는 착각을 한 것 같습니다. 순진하다고 해야 하나? 바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멍청하다고 해야 하나? 지금도 헷갈립니다.

4. 법원의 항소심 판결은 ‘표절’로 판시하지 않았습니다.

필자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 판결문을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좌파언론 보도에서는 ‘표절 패소’ 대대적인 보도를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판결문을 읽어보면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항소심에서 1심판결을 뒤집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이미 예견된 일어 엇고, 1심에서 전력을 기울이면서 치열하게 다퉜어야 했는데.....라는 생각과 법관의 성향을 파악하고 재판부 기피신청 등 취할 수 있는 노력이 부족했던 결과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애매모호한 판결문을 기화로 전의원은 좌파들에게 ‘표절녀’라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있는 우파진영의 무뇌한 인간들에게도 공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인용이 인정된다’라는 재판부의 추론적인 결과를 가지고 이용당하고, 앞으로도 그런 덤터기는 계속 짊어지고 가야할 것입니다.

여타 표절시비재판에서 있어 왔던 판결과는 다른 그런 결과인데, 그리고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의 논문조작과 인문계통의 표절시비는 그 진실을 알기에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물론 명백하게 들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전의원의 ‘일본은 없다’에 대한 표절시비는 그렇게 알쏭달쏭한 판결로 인해, 항소심이 기각되면서 패소로 낙인을 찍었습니다.

5. 유재순, 좌파언론, 전의원의 양심의 문제입니다.

위에서 살폈지만, 법은 어느 한쪽의 손을 시원스럽게 들어준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것을 확대해석해서 선전선동에 이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좌파언론에서 강력한 정치인을 숙정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을 때, 우파 언론은 좌파언론의 기사를 베끼고 있었습니다. 한나라당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진실을 파헤치고, 아군을 보호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잘난 사람에 대한 시기와 질투의 눈을 가진 구경꾼으로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전의원의 표절시비는 당사자와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고 공모했을 수도 있는 세력들의 양심의 문제일 뿐입니다. 속 시원하게 밝혀진 것도 없는데, 낙인을 찍고 확정적으로 비난하는 일은 자제되어야 할 것이고, 분명한 사실은 전의원은 ‘표절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하지 않았다면 하지 않은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양심’의 선택에 따라 답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아래, 전의원의 동경특파원 시절에 동고동락했던 유재순과도 절친한 일본인의 육필편지를 끝으로 글을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09.02.02. 강재천

아래)동고동락했던 일본인의 육필편지가 법보다 우선 되어야 정상적인 사회입니다.

전여옥의원은 결코 도용(표절)하지 않았다!!!


로마의 정치가 카이사르는 <사람은 자신이 보고싶은 것만 본다>고 하였습니다.
유력한 증거자료가 있는데 표절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진실은 외면한채 자신이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 말하나 봅니다.상대방작가는 익명처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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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옥·Y의 일본인 친구 "세키네 히로코"의 육필증언

그 당시부터 Y씨가 표절이라고 말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여옥 대변인(한나라당)의 도용의혹과 관련, 전 대변인과 재일 르포작가 Y씨의 일본인 친구인 세키네 히로코는 전 대변인에게 보낸 육필편지를 통해 "표절(도용)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이는 전 대변인의 93년 11월 <일본은 없다>가 출간된 이후 세키네가 "억울해서 어떡하냐. 그런 사람인 줄 몰았다"고 자신을 위로했다는 Y씨의 주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세키네는 "마츠이 히로코"라는 이름으로 전 대변인의 <일본은 없다> 뒷편에 "여옥씨와 추억"이란 제목으로 글을 썼던 NHK 국제국 직원출신이다. 그는 여기에서 "여옥씨는 저보다 훨씬 객관적이고, 기억력도 좋고, 정확하게 사물을 받아들이는 눈을 가졌다"며 "그 능력은 거침없이 발휘되어 불과 체재 3개월 만에 3년이나 머무른 유학생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질 수 있었다"고 극찬했다.

""먼저 쓴 사람이 이겼다"는 말을 Y씨가 자기대로 해석한 것"

세키네는 지난 7월 2일 전 대변인에게 보낸 육필 편지에서 ""원고를 보여주었다" "보지도 않았다"라는 두 분의 주장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고 밝힌 뒤 "Y씨가 너무나 낙담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로하는 말로 "먼저 쓴 사람이 이겼다"는 말을 했다"며 "그것을 Y씨가 자기대로(자기한테 유리하게) 해석한 모양"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세키네는 "전여옥씨는 일본에 왔을 때 일본말은 그리 못했었는데 금방 잘하게 됐다"며 "일본말을 사용해 취재도 하고 사람도 만나 저뿐만 아니라 전여옥씨를 아는 주위 사람들(이) 다 감탄했다"고 호평했다.

세키네는 "전여옥씨는 일본에 있었을 때 저와 같이 여행도 하고 영화도 보러 가고 다른 일본사람도 만나 식사도 하고 많이 놀았다"면서도 "놀기만 한 것은 아니고 기자로서 공부도 많이 하고 노력도 대단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Y씨는 지난 6월 <오마이뉴스>와의 일본 현지인터뷰에서 세키네가 "전여옥씨는 노미스기닷다요, 아소비스기닷다요(너무 마시고 놀기만 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Y씨는 당시 "그녀로부터 그 책을 일본어로 번역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자신의 양심으로는 도저히 번역을 할 수 없어 거절하는 편지를 조금 전에 부치고 오는 길이라면서 계속 나를 위로했다"며 "세키네는 내게 그녀의 친구로서 자신도 그녀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며 배신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고 주장했다.

Y씨는 세키네의 진술이 이렇게 180도 바뀐 이유와 관련, 지난 6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세키네가 "전 대변인에게 신세를 져서 일방적으로 당신 편을 들 수 없다"고 얘기했다"며 "일본인들은 결국 진실을 얘기하기 때문에 설득하면 문제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은 없다>는 일본의 나쁜 점만 말하고 있어 실망스러워"

하지만 세키네는 <일본의 없다>에 대해서만은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육필편지에서 "제가 일본사람이라서 그런지 (<일본은 없다>에 대해) 그다지 좋은 인상을 안받았다"며 "왜냐하면 전여옥씨는 저와 같이 있을 때는 일본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냉정히 판단하고 있었는데 그 책에는 나쁜 점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세키네는 "책이 나온 지 벌써 10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이 문제로 말썽이 되는 것은 이상하지 않냐"며 "두분은 자기의 특성을 살려 더 많은 활약을 해주길 바란다"고 편지를 마무리했다. 그는 특히 "10년 전의 일은 다 끝난 것으로 하고…"라며 두 사람의 화해를 제안하기도 했다.

다음은 세키네 히로코가 전여옥 대변인에게 보낸 육필편지의 전문이다.
전여옥씨께. 어제는 갑자기 전화가 와서 놀랐습니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됐다고 해서 우선 축하드립니다. 공사에 걸쳐 바쁘실 겁니다.

저는 기억나는 대로 글을 써봤습니다. 여옥씨가 읽어서 기분이 나쁘게 느끼는 것도 있겠지만, 그건 제 진심이라고 이해해주세요.

지금 저는 평범한 주부이고, 한국말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듣기도 말하기도 서툴러서 인터뷰는 싫습니다. 그러니까 기자들이 오면 이 글을 보여 주세요. 그 이상 할 말이 없으니까요. 저는 언제나 여옥씨 행복을 빌고 있습니다.

먼저 전여옥씨와 Y씨 두분 다 사람을 통해서 알게 됐고 친구가 된 사람입니다. 그 당시 저는 두분을 좋아했었습니다. 그후 전여옥씨가 책(일본은 없다)을 출판했습니다. 그것은 일본에서도 화제가 됐습니다. 그런데 Y씨에게서 "자기가 쓰려고 했던 것을 전여옥씨가 써버렸다"고 불만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전여옥씨의 부탁을 받고 책의 서문을 썼기 때문에 그 책에 대해서는 대단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서문은 책 내용을 읽기 전에 쓴 것입니다.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일본사람이라서 그런지 내용에 대해서는 그다지 좋은 인상을 안받았습니다. 약간 실망했다고도 할 수 있을까요. 왜냐하면 전여옥씨는 저와 같이 있을 때는 일본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냉정히 판단하고 있었는데 그 책에는 나쁜 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저는 전여옥씨가 책을 재미있게 쓰려고 한 의도를 알고 있었기에 전여옥씨에게는 불만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저는 전여옥씨를 일하는 사람으로서, 또 한 여성으로서 존경했었습니다.

전여옥씨는 일본에 왔을 때 일본말은 그리 못했었는데 금방 잘하게 됐고, 일본말을 사용해 취재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해서 저뿐만 아니라 전여옥씨를 아는 주위 사람들 다 감탄했었습니다.

그 당시부터 Y씨가 표절이라고 말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Y에게"먼저 쓴 사람이 이긴 것"이라고 말한 기억이 있습니다. "원고를 보여주었다" "보지도 않았다"라는 두분의 주장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Y씨가 너무나 낙담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로하는 말로 "먼저 쓴 사람이 이겼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것을 Y씨자기대로 해석한 모양입니다. 이제 와서 그때 누가 이 말을 하고 누가 저 말을 했다는 것을 문제삼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다시 말합니다. 전여옥씨는 일본에 있었을 때, 저와 같이 여행도 하고 영화도 보러 가고 다른 일본사람도 만나 식사도 하고 많이 놀았습니다. 그래도 놀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전여옥씨는 기자로서 공부도 많이 하고 노력도 대단했습니다. 전여옥씨는 제가 알기엔 누구보다도 솔직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현재의 전여옥씨가 있는 것이지요.

책이 나온 지 벌써 10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이 문제로 말썽이 되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는 같은 시절에 일본에서 지낸 전여옥씨, Y씨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두분은 하는 일도 다르고 가는 길도 다릅니다. 자기의 특성을 살려 더 많은 활약을 해주실 바랍니다. 10년 전의 일은 다 끝난 것으로 하고….

2004년 7월 2일 세키네 히로코
[강재천 민주화보상법개정안통과추진본부장: http://cafe.daum.net/chunyuok-okok]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