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도가 주목해야할 정진석 추기경의 “화합 위해 기도하자” 老衲 아라마(자유기고가, 장수 죽림정사) 정진석 추기경의 “화합 위해 기도하자”(2010.12.6)는 글을 보고 느낀 감상은 4대강 문제를 둘러싼 천주교 내외의 대립과 갈등을 화해와 일치로 이끌었던 훌륭한 선언이라는 것이었다. 불교의 화합・평화・교화의 가르침은 4대강 문제를 비롯하여 명동성당과 조계사에서 농성중인 한국통신노조연행사건(1995년)과 국가보안법폐지(2004년)의 선언에 드러난 바 있었으나 국가와 종교간의 갈등에서는 천주교 지도자들의 지도력이 더 우수했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불교는 화합(samagga)을 최상의 가치규범이자 질서규범으로 받드는 종교이다. 불교는 화합승단(和合僧團, 평화로운 교단)의 파괴를 부모와 아라한(阿羅漢)을 살해하거나 부처님 몸에서 피를 내는 등과 함께 오역죄(五逆罪)에 포함시키고 있다. 오역죄를 범한 자는 재출가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는 화합승단의 파괴가 얼마나 큰 죄악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율장에서는 화합승단의 파괴를 승단에서 영구히 추방되는 4바라이죄(四波羅夷) 다음 가는 중죄로 규정하고 있다. 비구 승잔죄 제13조목 가운데 제10조 파승죄(破僧罪)와 제11조 조파승죄(助破僧罪)가 이에 해당한다. 비구 승려가 지켜야 하는 250계의 맨 마지막 조문이 여초부지법(如草覆地法)인데 범계(犯戒)와 관련한 모든 시비가 일어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화합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승단의 고유한 회의법인 갈마법(羯磨法)에도 다수결 10대 원칙이 있다. 화합이 파괴되었거나 화합이 파괴될 우려가 있을 때는 갈마사(羯磨師, 의장)가 회의를 유보, 취소, 해산하는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작은 건물에 불을 놓아서라도 회의를 해산해 버리도록 지시한다. 이상과 같은 불교의 화합에 관한 가르침과 규정에 비추어 볼 때 정 추기경이 서울대교구 긴급 사제회를 취소한 것은 불교승단의 갈마사와 다름없는 조치였다. 불교는 해탈과 열반을 추구하는 종교이다. 해탈과 열반은 불교가 지향하는 불가침의 성역(聖域)이다. 이것이 평화의 세계인데 평화는 빨-리어로 santi(산스크리트, santi)이다. 이 말은 불교에서 말하는 삼법인(三法印)의 열반적정(涅槃寂靜)의 적정(寂靜, santi)에 해당한다. 이는 불교적 깨달음의 경지이다. 불교는 평화를 의미하는 이 적정을 3분화하고 있다. ① 세속적(世俗寂, sammuti-santi : 세속심의 평정한 상태)․ ② 피분적(彼分寂, tadanga-santi : 번뇌가 선정에 의해 일시적으로 억눌린 경지)․ ③ 구경적(究竟寂, accanta-santi : 번뇌가 전부 사라진 不死․涅槃의 경지) 이와 같이 3단계로 나눈다. 이상과 같은 불교의 3단계 평화관에 비추어 볼 때 정 추기경의 ‘화합 위해 기도하자’의 말씀은 세간적(세속적) 평화와 신앙적(피분적)에 에 해당하는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훌륭한 선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008년 6월 30일 개최한 정의구현사제단(정구사)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시국미사를 열어서 많은 논란을 야기하였다. 그때 막 부임한 주한 교황대사 파딜랴 대주교는 종교의 사회문제 참여의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하였다, 즉 ① 모든 시민의 자유롭고 평화적인 의사표현이어야 한다. ② 의견․행동 일치를 이룩하는 평화 화해의 수단으로서 미사가 지켜져야 한다(2008.7.10). 교황대사의 이 말은 미사는 일치・평화・화해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으니 이것이 천주교에서는 지도자가 있다는 강한 인상을 남길 수가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께서도 국가사회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종교인으로서 진력하신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순교자의 노래를 부르며 인생을 마감하는 그의 모습은, 다른 종교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나의 눈에도 종교인의 표상이며 모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김 추기경의 판단이 종교계를 비롯해 국민적 화합과 일치를 두 차례나 이끌어 내었으니 국가권력과 종교 간의 갈등과 관련된 사건으로서 한국 종교사에 길이 남을 좋은 사례였다고 말할 수가 있다. 첫 번째는 명동성당과 조계사에서 농성 중이던 한국통신노조간부 연행사건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당시 지자체 선거 등 긴급한 현안을 앞에 두고, 국민적 화해와 일치를 위해 집단행동유보(1995. 6. 20)를 발표하였다. 그러자 조계종도 6월 22일에 “…중요한 시기에 중구난방의 자기주장으로 분열과 혼란으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하며 모든 이의 행동 자제를 강조하였다. 두 번째는 2004년 참여정부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하던 때였다. 김 추기경은 남북문제 등을 감안할 때 지금은 폐지해도 되는 ‘때’가 아니라며 국가보안법폐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였던 것이다.(2004. 9. 14) 이상과 같은 김수환 추기경의 판단과 신념은 때와 장소 그리고 상대의 근기(根器)에 따라 가르침을 펴야한다는 불교의 교화원칙과 일치한다. 또 불교승단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하는 덕목이라고 할 ‘때’를 알아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안목까지 지녔음을 보여 주었다. 그러했기에 조계종도 가톨릭의 결정을 좇아서 이의 없이 동참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12월 16일 정 추기경의 “화합 위해 기도하자”는 말씀에 따라 긴급 사제회의가 취소되자(12. 16),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4대강 사업은 하나님의 창조질서 거스르는 것’(12. 17)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럼에도 천주교 내의 4대강 사업 등을 둘러싼 가톨릭 주교회와의 대립과 갈등은 수습되어 정상화되리라고 믿는다. 한국 천주교의 총본산이라고 할 명동성당은 7-80년대 민주화와 문민정부 탄생의 도덕적 모태였다. 명동성당은 공권력 투입(1995. 6. 6)의 문제로 천주교와 문민정부 사이에 극심한 대립과 갈등이 있었음에도 비굴하거나 독선적이지 않고 이해하는 미덕을 보였었다. 한국불교를 이끌고 있는 제도권 승려들 가운데 생명․평화를 외치며 반정부의 입장을 내세운 이들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해탈・열반・화합・무쟁(無諍)・이욕(離慾) 등 불교의 참 가치나 불교종단의 본분을 망각하여 시류에 영합하여 참여와 투쟁을 일삼고 있음으로써 신자와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오도했던 것은 아닌지. 결과적으로 4대강 문제를 놓고 불교에 이어 천주교의 일부 사제들까지도 정부와 대립을 계속하고 있는 것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이번 정 추기경의 “화합 위해 기도하자”는 메시지를 따라서 천주교 내 4대강 사업 등과 관련한 갈등이 진정(鎭靜, adhikarana-samatha)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오늘은 신묘년 1월 1일이다. 불교와 천주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인들이 종교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입재라도 해야하는 것이 아닌지 염려가 된다. 필자 주 : 이 글은 금년 1월 1일 ‘불교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쓰여진 글이었으나, 3월 10일 종사협 제2회 원탁토론회, “세계평화를 위한 5대종교간의 대화-불교의 평화사상”에 참석차 왔다가 천주교측의 토론자 대신으로 발표된 내용임. 애초의 내용에서 약간 수정 보완되었음을 밝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