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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의 모략중상을 받은 全斗煥 전 대통령

-아직도 남북한, 모략전의 주술에 걸린 남녀들은 각성해야-


한국사에 전두환 전 대통령만큼 모략중상의 흑색선전(黑色宣傳)을 당한 대통령이 또 있을까? 그는 무엇보다도 광주 ‘5,18문제’에 관해 집중적으로 모략중상을 받았다. 모략중상의 원인자(原因者)는 누구인가? 첫째, 대한민국 내에는 대통령병에 환장 하다시피한 DJ와 YS였고, 둘째, 한반도를 한 시 바삐 김일성왕조로 만들기 위해 환장한 북한정권이었다. 지금도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남북한 좌파들의 모략중상은 진행중이다.

80년대 초, 나는 無爲寺(전남 강진군 성전면, 죽전리 소재) 주지직에서 8년간 재직하고 있었다. 당시 광주 사태 직후 나는 강진읍에서 DJ는 수하인 김모(某) 전 국회의장을 대동하여 강진 장터에서 演說場(연설장)을 만들어 광주 사태에 대한 연설을 했었다. 연설장 壇下(단하)에는 풍물패들이 강조하는 선동연설이 있을 때마다 징, 북, 괭가리, 장고를 요란스럽게 울리면서 “옳소!!” 소리를 내지르며, 군중을 흥분시켰다.

DJ와 김모는 선후의 차례로 강연을 하면서 뛰어난 웅변으로 당시 대통령이 아닌 전두환 장군을 광주사태를 일으킨 괴수요, 살인마로 만드는 모략중상을 대대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북한에서는 밀입북한 황석영이 쓴 각본대로 광주사태의 영화 ‘임을 위한 교향시“를 제작하여 전두환 대통령을 모략중상했다. 그것은 사상최대요, 전무후무할 모략중상으로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천추에 한이 될 지경으로 함정에 빠졌다.

DJ와 김모는 전남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전남북 사람들에게 첫째, 전두환을 광주사태의 원흉으로 만들었다. 연설장에는 ”여러분, 경상도 군인들이 우리 전라도 사람 다 죽이려 합니다!“고 외쳤다가 다음에는 ”경상도 사람들이 우리 전라도 사람 다 죽이려 듭니다!“고 선동했다. 결론은 ”우리 전라도 사람들이 살아남으려면, 김대중선생을 중심으로 뭉쳐야 살 수 있습니다.!“고 외쳤다. 징, 북, 괭가리, 장고 소리와 “옳소!”의 지지 함성이 곳곳이 진동했다.

광주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DJ와 김모의 순회강연은 순식간에 전남북의 정치 지지 민심을 확 바꾸어 버렸다. 경상도 사람의 총구에서 전라도 사람이 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위한 유일한 길은, “김대중선생으로 뭉쳐야 한다.”는 모략 선전선동은 전남북을 휩쓸었다. 그 선전선동이 있은 후, 김대중 당은 전남북의 국회의원을 완전히 독차지 하는 이변을 보였다. 광주사태가 없었다면, DJ는 전남북의 정치 맹주가 될 수 없었고,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모략 선전선동은, 마침내 DJ가 호남의 정치 맹주로 등극하는데 성공했다.

남북한 좌파들이 음모한 전두환 대통령에 대해서 펼친 모략중상은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가? 호남의 일부 남녀들은 魔酒(마주)에 취한듯 모략중상극에 도취하여 일면식이 없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지목하여 “전두환이 공수부대를 보내 광주 사람 죽였다”는 것과 심지어는 “전두환이 대검으로 임산부를 찔렀다”로 발전하여 지껄이고 있기도 하다.

나는 어느 남녀에게 “전두환 대통령이 직접 대검으로 임산부를 찌르는 것을 목격했느냐”,를 물으면 하나같이 다른 사람에게 들었다는 유언비어이다. 북한이 제작한 영화 ‘임을 위한 교향시’의 영화를 보고, 잔혹한 장면을 자신이 직접 목도한 것처럼 주위에 퍼뜨리는 사람이 대부분이요, 주로 전라도인이다. “경상도 사람이 총을 들어 전라도 사람 다 죽이려 한다”는 새빨간 거짓 선동의 말을 믿어 의심치 않는 전라도 사람들은 정치인의 영원한 노예요, 영호남의 화합은 물건너 간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광주에 계엄군인 공수부대는 왜 갔나? 광주 시민들이 간디의 무저항식 시위를 하는데도 계엄군들이 무장하고 달려갔을까? 법을 지키는 평화적 시위를 하는데도 공수부대들이 달려갔을까? 입으로는 “민주화”를 외치면서 행동은 유혈사태를 부르는 폭력시위로 투척된 화염병으로 파출소가 불타고, 경찰이 질서유지를 포기하고 피신한 무법천지를 누가 연출했는가? 무법천지를 연출한 그들이 계엄군을 광주로 출동케 초래한 원인이 아닌가?

광주에 군의 출동은 누가 결정했는가?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독자적 권한으로 광주에 계엄군을 혼자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국군통수권자가 아니었다. 엄연한 국법이 있었다. 위로는 최규하 대통령이 있었다. 그 밑으로는 계엄사령관 대장 이희성이 있었다. 이희성의 육사 동기생인 광주를 관할하는 2군 사령관 대장 진종채가 있었으며, 역시 이희성의 육사 동기생인 전남,북 계엄사령관에 중장 윤흥정이 있었다. 그 밑으로는 광주 계엄 책임자 31사단장 소장 정웅 장군이 있었다.

광주에 계엄군을 불러 들인 것은 현지 사령관인 정웅 사단장이다. 그의 보고와 계엄군 출병의 요청시작으로 전교사의 윤흥정 사령관과 계엄사령관, 대통령 순으로 보고되어 마침내 계엄군이 출동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대통령과 계엄사령관을 무시하고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독단으로 계엄군을 출동시켰다는 것은 계엄군 지휘조직을 전혀 모르는 자나, 뻔히 알면서 억지주장을 하여 국제사회가 비웃을 모략중상을 하는 것이다.

최규하 대통령은 80년 5월, 직접 광주 전교사를 방문하여 다음과 같이 방송을 통해 광주시민에게 호소했다.

“친애하는 광주시민 여러분, 그리고 애국학생 여러분, 저 최규하 대통령입니다. 지금 광주에 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직접 만나 뵙지 못하고 이렇게 녹음 방송으로 대신함을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중략-하루속히 여러분이 원하는 참된 민주주의로 광주시민이 평온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최규하 대통령의 간절한 호소의 방송도 무장투쟁을 하는 시민군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시민군측은 오직 광주에서 發火(발화)한 무장폭동의 불씨가 요원의 들불처럼, 전국적인 무장폭동으로 번져 대한민국을 장악할 수 있기를 바랐을 뿐이다.

계엄군의 광주 발포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이 역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요청하고 명령한 것이 아니다. 그해 5월 21일 19시 30분경, KBS 방송을 통해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광주사태에 관하여 담화를 발표했다. 계엄사령관은 담화문에서 광주시민의 자제를 호소하는 한편, “계엄군은 폭력으로 국내 치안을 어지럽히는 행위에 대하여서는 부득히 자위를 위해서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하고 있음을 경고한다”고 천명했다.

담화가 있은 직후인 20:00시경에 계엄사령부는 2군사령부에 자위권 발동을 전통을 통해 지시했고, 5월22일에는 계엄훈령 11호로서 자위권발동의 요건을 전 계엄군에게 시달하였다. 그리고 2군 사령부는 20:30분경 광주 전교사에 계엄군의 자위권을 지시한 것이다.

5월 22일의 광주는 군병력과 경찰력이 상부의 명령에 의해 외곽으로 철수한 상태에서 광주는 민주화를 외치는 복면 무장시위대의 완전한 점령지가 되었다. 무장시위는 광주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전남 23개 군(郡), 4개 시(市) 중, 14개군과 2개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30∼200단위의 무장시위대가 경찰서 및 예비군 무기고를 기습, 무기를 탈취하여 광주시민군과의 연결작전을 시도했다. 이 무렵, 무장시위대는 2700여명이 수감되어 있는 광주 교도소를 총 6차에 걸쳐 공격했다.

왜 무장시위대는 6차에 걸쳐 집요하게 광주 교도소를 공격했을까? 그것은 2700여명의 수감자들을 해방하여 그들의 손에 무기를 들려 대한민국 정부를 향해 무장투쟁을 가열차게 하겠다는 음모였다. 광주교도소를 공격하는 의도를 안 계엄군은 필사적으로 교도소를 방어했다. 계엄군이 광주 교도소를 사수하지 않았다면, 2700여명의 수감자가 시민군으로부터 총기를 받아 대한민국을 향해 총탄을 발사했을 것이다. 계엄군이 주검을 무릅쓰고 피흘려 교도소를 사수한 것은 기립박수를 보내 격찬할 일이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고, 그리고 산을 보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광주에 왜 계엄군이 가서 유혈사태를 일으켰느냐, 에 초점을 두지 말라. 계엄군이 출동하지 않을 수 없는 광주의 상황을 연출한 자들에 대하여 통찰해야 할 것이다. 국군에게 총탄을 발사하는 무장시위대를 향해 계엄군이 손놓고 있었으면 불똥은 어떻게 비화 되었을까? 요원의 들불이 되어 전국적으로 비화 되었을 것이다. 만약 전국적으로 비화 되었다면, 사회 혼란속에 경제는 파탄이요, 호시탐탐 남침을 노리는 김일성이 특수부대의 밀파(密派)가 아닌 정규부대의 남침을 결행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고, 대한민국은 또다시 남침전쟁으로 戰禍(전화)에 휩쓸려 떼주검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80년 5월 10일, 한국 정보부는 일본 정보부격인 내각조사실 한반도 담당 반장으로부터 화급한 정보를 제공받았다. 광주 사태를 이용하여 북한이 남침을 결행 하려 한다는 것이다. 북한정권은 박대통령 시해 후 혼란기의 한국에서 내응의 무장폭동을 발발케 하고, 그 다음, 북한군이 남침한다는 음모를 꾸미는 대화들이 일본측에 감청된 것이다. 감청에 의하면, 북한정권은 광주의 무장폭동이 전국적으로 번져가는 것을 기대하면서, 인민군이 제2 한국전을 일으키기 위해 “군대 출병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일본 정보부가 속보로 전해 온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최규하 대통령과 군수뇌부는 初期鎭火(초기진화)하듯이 광주로 계엄군을 급파한 것이다. 계엄군은 시민군측의 총탄에 죽어가며 북한군의 남침 서곡을 잠재워 버린 것이다.

나는 광주 사태의 현장에서 무장시위대가 붙인 벽보인 大字報(대자보)를 목도했다. 대자보에서 시민군은 시민들에게 “서울과 부산, 대구, 대전, 인천 등 전국 주요도시에서 자신들과 같은 무장시위대가 일어나 광주를 지원하기 위해 오고 있다”고 선전 선동했다. 또, “미 7함대가 무장시위대의 광주를 돕기 위해 오고 있다”고 선전하며, 독전(督戰)했다.

그러나 광주시외 도시의 대다수 시민들은 현명했다. 광주의 무장봉기에 호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광주의 무장봉기가 북한군의 남침을 유발시켜 제2 한국전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고 개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미 7함대가 광주 시민을 구하기 위해 온다는 것도 새빨간 거짓 선동으로 밝혀졌다.

탈북인의 저술, 증언에 의하면, 북한정권은 광주사태를 소재로 영화 2편을 만들었다고 한다. ‘광주는 부른다’와 ‘님을 위한 교향시’다. 님을 위한 교향시는 1991년에 완성했다. 광주사태 촬영장소는 신의주였다. 신의주 시내 모든 대학생들이 영화촬영에 동원되었다. 신의주 대학생들은 한쪽은 광주 시민군, 한쪽은 계엄군으로 분장하여 연기했다는 것이다.

북한정권은 자신들이 멋대로 만든 ‘5,18영화’에서 계엄군이 대검으로 임산부의 복부를 찌르고 가르는 모습과 어린 초등생을 향해 계엄군이 총을 쏴 죽이는 등을 연출했다. 잔인하게, 천인공노할 만행을 자행하는 국군상을 만드는데 광분했다. 결론은 무엇인가? 그 영화로 첫째, 북한인민을 기만하고, 둘째, 한국의 국민과 군을 이간질 시킨 것이다.

북한정권은 해마다 5월 18일에는 거리마다 포스터를 걸어놓고, 추모행사와 군중시위를 벌인다. 노동자대표, 청년학생대표, 농민대표들이 차례로 나와 연설과 구호를 외친다. 인민들에게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은 남조선 인민들이 주체사상으로 반미 자주화를 위해 싸운 항쟁운동"이라고 선전한다. 또 김일성 수령을 위한 충성운동이었다고 선전한다.

또, 북한정권은, 인민들의 반미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해 "계엄군이 선량한 광주시민을 죽이는 것은 미국이 배후에서 지휘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제작 ‘5,18 영화”속에는 주한 미 대사 글라이스틴이 전두환 장군을 골방으로 불러 광주 진압에 대해 지시를 내리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국내로는 DJ, YS의 모략중상과 그에 부화뇌동하는 좌파 언론인, 학자, 운동권 등의 무차별 모략중상과, 북한정권이 만든 ‘5,18영화’, ‘임을 위한 교향시’ 속에서까지 광주로 간 계엄군과 함께 회복하기 난망한 모략중상을 받은 것이다.

북한정권은 왜 전두환을 미워하고 죽이지 못해 발광하듯 하는가? 북한정권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세 전 대통령들을 극도로 미워했다. 왜? 반공을 국시로 하여 김일성, 김정일의 침략 야욕을 봉쇄하고,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대통령들이기 때문이다.

북한정권은 대남적화를 위해 오래전부터 한국에 좌파 정치인을 지원하여 정권을 잡도록 획책했다. 좌파 정치인이 대한민국을 통째로 바치게 하려는 속셈인 것이다. 좌파 정치인이 빨리 정권을 잡게 하기 위해서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에게 암살대를 보낸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이 북한정권이 파놓은 함정, 아웅산에서 무사한 것은 천운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이 반공투사가 아닌 좌파였다면, 북한정권은 절대 암살공작과 사상최대의 모략전을 펼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DJ와 YS, 그리고 추종자들이 음모인 모략중상은 합천군까지 파급되어 일부 못난 합천인은 일해공원을 반대하고 나섰다. 또 못난이들은 전두환 대통령의 생가까지 방화했다. 모두 모략중상에 도취하여 발광한 것이라 지탄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뭐라 해도 전두환 전 대통령은 합천이 배출한 유일한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날의 계엄군과 광주 민중항쟁의 인사들이 함께 사는 해원상생의 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언제까지 시민군은 옳고, 진압한 계엄군은 오히려 광주 민주화를 말살한 폭도다, 라는 주장을 고집할 것인가? 호남권 외에 누가 계엄군을 폭도라고 믿을 것인가? 그동안 광주항쟁의 민주화 인사들은 명예와 보상이 있었다. 그날의 계엄군에게는 보상은 없고, 오히려 명예는 박탈당한 채, 수모와 오욕의 세월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날의 “계엄군에게도 명예와 보상이 주어지는 세상이 와야 한다” 는 것이 대부분 국민 여론이다.

경상도 사람들에게 전라도 사람 다 죽이려 한다, 는 억지 누명을 쒸우고, 정치권력을 잡으려는 정치인들이 아직도 설치는 한, 진정한 영호남의 화합을 바랄 수 있을까? 그날의 계엄군과 시민군들이 서로 얼싸안고 화해속에 해원 상생할 수 있도록, 호남이 먼저 통 큰 긍지를 보여주는 것이 작게는 영호남 화합의 첫단추가 열리는 것이고, 나아가 국민통합의 첩경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바이다.

끝으로, 전두환 대통령은, 자신이 광주 무장폭동을 잠재우는 최종 지휘자가 아니라고 언명했다. 당시 국군 통수권자인 최규하 대통령과 군 최고 지휘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 무장폭동을 잠재웠다면, 제2 한국전을 사전에 원천봉쇄한 영웅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대통령들이 단계적으로 번영하는 국운이 선택했듯이, 전두환 대통령도 국운이 선택했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북한정권과 국내 좌파들의 사상 최대의 모략중상극에 附和雷同(부화뇌동)하고, 기만당해서는 안될 것이다. ◇



李 法 徹(bubchul@hotmail.com)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