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자유선진당이 창당됐다. 창당대회가 열린 장충체육관은 열기로 가득했다. 창당작업에 관여했던 지인을 만났다. 대통합민주신당에서 며칠 전 자유선진당으로 옮긴 유재건 의원이 전당대회 의장으로 추대되자 그가 한 마디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저 당에 있던 사람이 당적을 옮긴 지 하루 만에 전당대회 의장이라니... 너무한 것 아닌가요?” 그 분이 말하지 않아도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유재건 의원 개인에게 유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국민회의-민주당-열우당-쉰당에 몸담아 왔지만, 비교적 합리적이고 보수적인 노선을 걸어온 인물이었다. 한나라당 공천으로 세 번이나 경남지사를 하고서도 총리, 혹은 대권 후보를 꿈꾸며 열우당으로 달려가 “마지막 열우당원이 되겠다”고 호언하던 김혁규나, 김대중의 충실한 수하 노릇을 하던 이윤수, 안동선 같은 이들에 비하면 훨씬 나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불과 며칠 전까지 쉰당 중진이었다가 자유선진당으로 당적을 옮긴 이에게 초대 전당대회 의장직을 맡겨 창당대회를 이끌게 하다니.... 이정훈 연세대 교수가 창당선언문을 낭독했다.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과 정당성에 기초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하며, 자유와 개방, 그리고 자발적 공동체의 가치에 동의하는 국민들의 뜻을 모아 자유선진당을 창당한다....” 창당선언문 뿐 아니라 정강-정책 전문 첫머리도 “자유선진당은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과 정당성에 기초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하며 자유와 개방, 그리고 자발적 공동체의 가치에 동의하는 국민들의 뜻을 모은 정당이다”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어떤 정당이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이토록 강조했던가? 자유선진당이나 이회창 총재의 정치 재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지만,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강조하는 이 부분은 십분 공감이 갔다. 이회창 총재 역시 총재 취임연설에서 이 부분을 되풀이하면서 자유선진당이 ‘가치 정당’임을 강조했다. 이회창 총재를 보좌할 최고위원으로는 강삼재 전 의원과 이영애 변호사가 선출됐다. 이영애 변호사는 최초의 여성법원장으로 대법관 물망에 올랐던 분. 그를 아는 분들은 이변호사를 자유선진당의 보수적 정체성을 분명히 할 사람으로 꼽아왔다. 사실 자유선진당 최고위원의 한 사람으로는 김혁규 전 경남지사가 거론되어 왔다고 한다. "김 전 지사가 창당 과정에서 상당한 재정적 기여를 했고, 그 댓가로 그에게 최고위원 자리를 줄 것"이라는 설이 심심찮게 돌았었다. 하지만 김 전 지사는 어제 창당대회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아마 자신이 최고위원에서 탈락한데 대한 불만의 표시였으리라. 소식통에 의하면 김 전 지사는 기자들에게 탈당의사를 시사했다고 한다. 그 소식통은 “김혁규 전 지사가 최고위원에서 탈락한 것은 지난번 토론회나 프리존 등에서 김혁규의 예를 들어 자유선진당의 정체성을 문제삼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여기서 자유선진당 회생의 가능성을 본다. 이회창 총재가 대선 출마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정강-정책에 나타난 대로 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김혁규 전 지사 등 기회주의자들을 척결하고, 유석춘 교수, 이상돈 교수, 전원책 변호사 등 확실한 보수주의자들을 중용한다면, 자유선진당은 가능성이 있다. 특히 현재 국회의원 선거는 1인2표제이므로 지역구 의원은 한나라당을 선택해도 정당투표에서는 자유선진당에게 투표하겠다는 사람들을 잡으면, 자유선진당은 오는 4월 총선에서 의미 있는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회창 총재와 자유선진당이 보수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 주기를 기대한다. -프리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