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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뉴스

광주 5.18의 진실 논쟁

김대중과 미국 해리티지재단과 한미우호증진협의회의 5.18 사관

서석구 변호사

미국 레이건 정부는 전두환 정부에 압력을 넣어 김대중을 석방시키고 미국으로 가게 했고 김대중을 구명한 레이건 정부의 싱크탱크인 해리티지 재단은 광주사태의 규모를 감안하면 한국정부와 한국군이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고 5.18 보고서에서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을 구명한 미국을 5.18 학살의 원흉이고 한국군은 5.18 학살의 주범이라고 날조하는 남북한의 5.18행사와 남북한의 5.18 영화는 진실과 거리가 멀다. 유네스코에 5.18 기록을 등재케 한 5.18 단체와는 대조적으로 한미우호증진협의회는 5.18 기록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것을 반대했다. 5.18사태보다 훨씬 더 끔찍한 북한독재정권의 인권탄압에는 침묵하면서 5.18을 반미반정부투쟁으로 악용하는 5.18 은 북한의 대남공작에 불과하다.

북한의 대남공작인 국가보안법폐지투쟁을 벌린 박원순 변호사를 야권단일화 후보로 결정한 것은 북한이 그동안 야권연대 이명박 역도 반역정권 타도를 선동한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야권이 단결하는 것에 맞서 여권도 분열할 것이 아니라 단결해야 한다. 비교적 정체성이 뚜렷한 나경원 의원의 서울시장 선거는 한나라당 계파갈등을 부추기거나 오세훈 주민투표의 대리전으로 치룰 것이 아니라 친이 친박 자유선진당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대연합으로 단결하여야 하지 않을까?

과연 5.18의 진실은 무엇인가? 피고인이 머리글 ‘5.18의 진실’은 과연 진실한 사실인가?피고인의 머리글 ‘5.18의 진실’이 과연 명예훼손의 객관적 요건인 진실한 사실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조각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하여 5.18에 대한 다음과 같은 다양한 5.18 진실논쟁을 연구 검토 비교해보기로 합니다.

[5.18이 남조선 광주인민의 반미투쟁, 군사파쇼반대투쟁이라고 하는 북한의 5.18 사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수많은 인민들이 떨쳐 일어나 손에 무장을 들고 용감히 싸운 광주인민들의 영웅적 봉기는 남조선의 파쑈통치기반을 크게 뒤흔들어 놓았으며 미제와 그 앞잡이 군사파쑈분자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하였습니다.> (김일성 저작집 35권, 340) (1990년 3월호 북한의 근로단체출판사가 간행한 조선녀성(증 30호)의 5.18 사관) 광주대학살 만행의 배후조종자는 철전지 원수 미제침략자다.(1990년 3월호 북한의 근로단체출판사가 간행한 조선녀성(증 30호)의 5.18 사관)

<광주의 분노>가 내린 5.18에 대한 정의: ‘광주봉기는 민족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이었고, <광주민주국>을 세우는 데까지 성공했으며, 광주의 영웅들이 세운 위훈을 교훈으로 기려야 한다.’ “영웅적 광주인민들의 봉기는 바로 자주성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의 한 고리였다.”(증38, 3쪽 하3-4) ( 조선노동당출판사가 1985년에 발간한 단행본 <광주의 분노> (증38)의 5.18 사관)

봉기 10일 동안 광주시에서는 무려 5천여명이 학살당하고 1만4천여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주변 시, 군들에서도 1천7백여명의 무고한 주민들이 살상되었다. (1990년 3월호 북한의 근로단체출판사가 간행한 조선녀성(증 30호)의 5.18 사관)

무고한 학생, 시민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였고, 특히 청년학생들을 닥치는 대로 찔러 죽이고 녀학생들을 부모가 보는 가운데 발가 벗기고 젖가슴을 도려낸 다음 화염방사기로 불태워 죽였다. 광주에서 희생된 수는 5천여 명에 달하는데 총기류에 살해당한 수는 2,600여명, 장갑차 등에 깔려 죽은 수는 150여 명, 생매장 당한 수는 1,700여명, 화장당한 수는 920여명, 대검에 찔리우고 총탁에 맞아죽은 수는 330여명이며, 중경상자는 1만4천여명이나 된다. (북한 1982년 조국통일사가 간행한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증 31호)의 5.18 사관)

광주사태때 날조된 유언비어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조작한 북한의 5.18 사관...파쇼살인마들은 <광주시민 70%를 죽여도 좋다. 젊은이들은 모조리 죽여라.>는 살인명령을 내려 무차별적으로 살육하다 못해 녀학생들의 유방을 도려내어 죽이고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까지 꺼내어 참살하는 등 귀축같은 만행을 저질렀다. (1990년 3월호 북한의 근로단체출판사가 간행한 조선녀성(증 30호)의 5.18 사관) 전두환 도당은 <광주시민의 70%를 죽여도 좋다>는 명령을 내렸다. (북한 1982년 조국통일사가 간행한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증 31호)의 5.18 사관)

21개 등의 괴뢰통치기관을 불태우고 50여개의 어용기관을 파괴하였으며 봉기군중은 괴뢰경찰서와 무기고, 화약고들을 습격하여 5천4백여정의 각종 저격무기와 수십만발의 탄알들을 로획하였으며 각종 차량 459대를 파괴소각하였다. (1990년 3월호 북한의 근로단체출판사가 간행한 조선녀성(증 30호)의 5.18 사관)...“이날(주:5.19) 폭동군중은 도청차고와 괴뢰세무서, 8개의 괴뢰경찰파출소, 3개의 신문사와 방송국, 우체국, 은행 등을 불태워버렸고, 놈들의 자동차 50여대를 파괴 소각하여 버렸다.”(증38호, 29쪽 8-11줄) ( 조선노동당출판사가 1985년에 발간한 단행본 <광주의 분노> (증38)의 5.18 사관)

광주항쟁은 끝나지 않았으며 광주인민들과 남녘겨레들의 가슴속에 그날의 울분과 분노가 그대로 서리고 맺혀있다. 원한을 풀고 자주, 민주, 통일의 새날을 기어이 안아 오고야 말 것이다. (1990년 3월호 북한의 근로단체출판사가 간행한 조선녀성(증 30호)의 5.18 사관)...광주 이름 모를 여학생의 김일성 장군님의 품에 안기고 싶다는 마지막 말이 광주인민봉기자들과 남한인민 모두의 마음을 반영한 것이라는 북한의 5.18 사관

항쟁의 광장에서 꽃다운 청춘을 바친 광주의 이름 없는 한 녀학생은 흐느끼는 동료들과 시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길을 달려 경애하는 아버지 김일성 장군님의 품에 안기려 했어요. 아 김일성 장군님 단 한순간만이라도 뵙고 싶어요 > 수령님의 자애로운 품만을 한없이 그리는 광주의 봉기자들과 남녘의 인민 모두의 간절한 마음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북한 1982년 조국통일사가 간행한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 의 투쟁(증 31호)의 5.18 사관)...북한특수부대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작전으로 추정되는 북한 간행물의 5.18 작전보도

“시위에서는 과감한 육박에 의한 경찰저지선의 정면돌파와 경찰의 포위를 역포위로 전환시켜 앞으로 열어나가는 돌파, 분산과 집합, 큰 대열과 작은 대열의 배합, 속도행진에 의한 빠른 기동과 바리케트에 의한 완강한 방어 등으로 주도권을 틀어쥐고 적을 피동에 몰아넣었다. 또한 작은 돌과 큰돌 심지어는 화염병까지 준비하여 적에 대한 타격력을 높였으며 의학대학 학생들로 치료대를 조직하여 부상자에 대한 응급조치를 받게 하는 등 치밀한 준비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시위와 대중선전을 밀접히 결합시키면서 광장과 큰거리에서의 집회에 큰 의의를 부여하는 한편 시민들에게는 <함께 싸우자!>고 호소하는 삐라를 뿌렸고, 공장지대에서는 로동자들에게 확성기로 <함께 나가자!>고 호소하였고, 경찰들에게도 함화를 들이대었다. 이것은 학생들의 투쟁전술에서도 종전의 투쟁에 비하여 큰 진전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증31, 567쪽 13-26줄)(북한 1982년 조국통일사가 간행한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 의 투쟁(증 31호)의 5.18 사관)

7공수 35대대장이었던 김일옥 대대장의 증언(김일옥 증인신문조서)이나 11공수 안부중 대대장과 3공수 김완배 대대장의 각 진술서(증 99호, 증 100호)에 의하여도 순진한 광주시민이 저질렀다기 보다는 불순세력이 악성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조직적으로 가담하고 시위대를 지휘한 사실이 인정됩니다.

[북한간행물의 제주 4.3 사태 보도]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117, 118, 119쪽)에 의하면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미제의 남조선단독선거를 저지파탄시키기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에서 맨 선창으로 폭발한 적극적인 투쟁은 제주도에서 일어난 4.3 인민봉기였다고 하면서 제주봉기자들은 대담하고 기동적인 속공전술로 조천, 함덕, 삼양, 외도, 한림, 구암, 고산, 애월, 남원, 성산, 안덕, 중문, 대정, 무릉 등 14개의 경찰지서와 출장소 그리고 제주, 서귀포 경찰서를 비롯한 경찰의 숙소, 행정기관들을 습격파괴하였고 조선통일 만세! 미제의 주구를 타도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 북한 1982년 조국통일사가 간행한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 의 투쟁(증 31호)의 5.18 사관)

1982년의 북한 간행물이 13년이나 지난 1995년 김영삼 정권의 검찰과 국방부 수사결과(증9호)가 반미자주투쟁이라는 북한간행물과 1980년 기소나 판결과 대부분 같다는 수사결과만 다를 뿐 광주사태 시위상황(날자 별 시위상황, 무기고 습격 무기 탈취, 교도소 습격 교전, 차량돌진, 악성유언비어)에 관한 부분이 대부분 같거나 보다 구체적이고 과장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5.18 수사기록 재판기록이 2004년 대법원의 결정에 의하여 공개되기 훨씬 이전인 1982년에 간행된 북한의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에 기록된 5.18 사태에 대한 기록이 1982년보다 13년이나 지난 1995년에 발표한 김영삼정권의 서울지방검찰청,국방부 검찰부의 5.18 사태에 관한 수사결과(증 9호)와 2004년 공개한 수사기록과 대비하여 대부분 그 내용이 같거나 더 구체적이고 다만 주체의 기치따라 반미자주통일 투쟁이라는 측면이 더 구체화하고 지나치게 날조 과장한 것은 북한의 반미 반정부 반국군 반대한민국 5.18 사관이 들어난 것이라 할 것입니다. 이것은 피고인이 공소장에서 주장한 것이 결코 허위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한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북한의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591쪽)에 의하면 공수부대가 화염방사기로 불태워 죽였다고 한 표현이 황석영의 책(증44호, 81쪽)에서도 공수부대가 화염방사기로 불태워 죽였다는 날조된 표현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서울지방검찰청, 국방부검찰부 1995.7.18. 5.18관련사건 수사결과(증 9호, 참고자료 화염방사기 사용여부 pp211-213)에 의하면 화염방사기로 시체를 태운 사실이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황석영이 시나리오를 쓴 북한 5.18 영화에서도 화염방사기로 시체를 태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증 58,59,60,61호)

증 31호(597-598)에 “광주의 봉기자들이 쓰러진 동료들의 시체를 넘고 선혈로 물든 투쟁의 거리를 누비며 원쑤들과 결사전을 벌리던 그 나날에 그들이 심장으로부터 부른 노래는 통일의 노래였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통일이여 오라.’라는 표현이 황석영의 책(증 44호, 205쪽)에“어느 여학생이 청아한 목소리로 광장의 모퉁이에서 ‘우리의 소원이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는 군중들 사이로 차츰차츰 퍼져 나갔다. 드디어 광장 전체에 노래가 가득했다. 통일이여 오라”에서도 비슷한 표현이 나와 있습니다.

황석영이가 시나리오를 쓰고 윤이상이 음악을 담당한 북한의 5.18 영화에도 영화음악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과 ‘통일의 노래’가 나온다.(증 58호, 59호, 60호, 61호) 윤이상은 5.18에 “광주여 영원히!”라는 교향곡을 작곡해 바쳤습니다. (증 50호)

증 38호(20쪽)에 “청년의 손을 묶어 자동차 꽁무니에 달아내고 질질 끌고 다니다가 나중에는 깔아 죽였다”는 표현이 황석영의 책(증44호, 80쪽)에도 “대학생 하나를 발가 벗긴채 두 손을 묶어서 트럭 뒤에다 달고 달렸는데 도로에 질질 끌려 다니다가 절명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황석영이 시나리오를 쓴 북한 5.18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에도 위와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증 58, 59, 60, 61호)

증 38호(32쪽)에 “총, 총이 있어야 한다!”라는 표현도 황석영의 책(증 44호, 101쪽)에도 “저놈들이 발포를 했다. 총, 총이 있어야 한다. 우리도 총이 있어야 한다”라고 같은 취지의 표현이 있다. 남한의 광주시민들의 5.18 사관을 대변하는 황석영의 표현과 북한 간행물의 표현이 같다는 것은 그들의 5.18 사관이 비슷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5.18 민주화운동행사를 개최해온 단체들의 5.18 사관을 대변하는 황석영과 윤이상의 5.18 사관이 북한의 5.18 사관이 같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평양시를 필두로 전역 각지에서 5.18 민주화운동 12주년 군중집회를 개최하고 신문 방송 및 한민전 중앙위 명의의 ‘5월투쟁선언’ 등을 통해 과감한 반미-반파쇼 구국투쟁의 포문을 열라는 등 연일 반미반정부 투쟁을 극렬히 선동하였다. (증 37-1) (북한의 5.18 민주화운동 12주년 군중집회(증 37-1)의 5.18 사관) 2010년 5월 17일 연합뉴스는 5.18 30주년을 맞아 평양에서 ‘광주인민봉기 30돌 기념 평양시 보고회를 보도했습니다. 사진을 보면 보고회 현장에는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을 결사옹호 보위하자는 구호 글이 붙어있습니다. (제4차 답변서 4쪽). (2010.5.7. 광주인민봉기 30돌 기념 평양시 보고회)

법원의 허가를 받아 2010.8.5. 국립중앙도서관 5층에서 관람한 북한의 5.18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 1, 2부. 북한이 만든 5.18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 는 ‘정권을 타도하고 자주통일 이룩하자’, ‘악의 화신 전두환을 찢어죽이자’, ‘양키를 몰아내자’, ‘공수대는 극악무도한 살인귀다’라는 현수막과 구호가 난무하는 마치 북한의 자주통일을 위한 반파쇼 반미 반정부 반국군 반대한민국을 선동하는 영화였습니다. (증 58호, 61호)

북한의 5.18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는 국군을 잔인한 살인마로 날조하고 미 글라이스틴 대사가 무자비하게 진압하라고 지시하는 것처럼 다음과 같이 조작했습니다. (증 58, 59, 60, 61호) 환각제를 술에 타 마신 공수부대원들이 미친듯이 노인, 어린이, 여자, 임산부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사살하는 장면.

“전라도 놈들의 씨종자를 없애도 무방하다” “월남에서 그랬던 것처럼 광주에 가서도 무자비하게 죽여라, 광주 시민 모두를 죽여도 좋다”는 전두환의 명령 장면...임신부에게 ‘주머니 속에 든 것이 뭐야’하고 조롱하자, 겁에 질린 여인이 손에 든 가방을 들어 보이자 ‘무슨 말인지 모르는 군. 그럼 내가 가르쳐 주지’하면서 여인의 배를 대검으로 찌르는 장면. 큰 구덩이를 파 시민들을 생매장하는 장면. 부모의 석방을 간절히 호소하는 어린 소년을 무차별로 사살하는 장면. 한 시민의 두 발을 차량에 묶어 질질 끌고 가는 장면. 총에 맞은 여학생이 위대하신 김일성 장군의 품에 안기고 싶다고 하는 장면. 전두환 장군이 글라이스틴 미 대사를 만나 광주진압에 대한 협조를 구할 때 미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두환보다 한 술 더 떠 “미 대통령도 주한미군을 투입하라고 말했다. 그러니 하려면 무자비하게 진압하라”고 부추기는 장면

북한의 5.18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는 너무나 진실과는 거리가 먼 반미반정부 반국군 반대한민국으로 날조된 영화였습니다. (증 58내지 61호) 북한의 5.18 영화의 시나리오를 황석영이가 만들었고(증 51호), 음악은 윤이상이가 만들었습니다. 황석영은 북한에 다섯차례 밀입국해서 일곱차례나 김일성을 만났으며 김일성으로부터 ‘재간둥이’라는 칭찬을 받았고, 김일성을 이순신 같은 위인이라고 추앙했고(증 46호) 북한에 충성한 대가로 25만 달러를 받았으며(증 47호) 지난 대선때는 반 이명박 전선을 구축했습니다. (변제환 경제학박사, 이명박과 황석영, 그리고 진중권, 2009.5.18. 인터넷 독립신문)

북한은 윤이상에게 5천평 대지에 15층짜리 윤이상 음악당을 지어주었습니다 (김성욱, 김일성이 애국지사로 칭송한 윤이상, 조인스 블로그) 2000년 북한이 펴낸 김일성 교시집 재서독교포 윤이상 일행과 한 담화, 재서독교포 윤이상과 한 담화에 따르면 윤이상은 “주체사상은 현시대에 맞는 사상”이라고 말하자 김일성은 “그것은 옳은 말”이라고 화답했다. 같은 자료에 의하면 김일성은 윤이상이 “조국통일위업에 커다란 공적을 쌓아올렸다”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활동하는 애국지사”로 격찬했습니다. 5.18 북한영화는 진실과는 거리가 먼 조작된 영화입니다. 영화 음악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번갈아 나옵니다. (증 58, 59호 60호 61호)

황석영의 5.18 책 증 44호 205쪽이나 증 31호 북한의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 597-598쪽에도 북한의 5.18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에도 5.18 광주사태때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광주사태 현장에서 광주시민들이 부른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증 31호 (597-598) 는 통일의 노래를 부른 것은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신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를 통일조국에 모시려는 숭고한 열망으로 굽이쳤다고 하면서 통일노래를 부르다 흉탄에 맞아 치명상을 입은 녀학생이 아버지 김일성 장군님의 품에 안기고 싶다고 마지막 말을 남긴 것처럼 기록한 것은 북한이 5.18을 북한 김일성의 반미자주통일투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변호인은 남한의 황석영이 시나리오를 쓰고 남한의 윤이상이 음악을 담당해 남한의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군사독재정권 학살정권 남한국군을 살인군대, 미국을 5.18 학살원흉이라고 반미반정부반국군 선동을 한 반미반정부반국군북한의 5.18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모든 내용을 녹취한 것을 증거로 제시할 예정입니다. 그 내용을 본다면 황석영과 윤이상은 대한민국을 전복해 친북정권을 남한에 세우려는 북한독재정권의 대남공작을 위해 충성을 바친 간첩이나 다름없는 배신자로서 검찰이 수사를 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직무유기를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놀라운 사실은 황석영은 현정권에 중용이 되었고 통영에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낭비해 윤이상 음악당을 짓는 반역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필이면 5.18 현장에서 통일의 노래가 합창된 것 즉 남한의 5.18 영화, 남한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너머 저서와 북한의 5.18 영화에서 똑 같이 통일의 노래가 합창된 것은 북한의 대남공작 반미자주통일을 부추기기 위한 교활한 북한군의 음모가 아니겠습니까?

[남한 5.18 민주화운동 행사의 5.18 사관]
범민련 남측본부, 범청학련 남측본부, 민주노총,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반미여성회, 전국빈민연합 등 16개 단체가 미 대사관앞에서 <광주 학살 주범 미국은 우리 민족앞에 사과하고 한반도 전쟁위협을 즉각 중지하며, 미군을 철수하라>는 요지의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2005년 5월 18일 5.18 광주항쟁 25주년 공동성명(증 81 가) 2005.5.15. 전남도청 앞 행사 공지문에는 다음과 같은 격문이 붙어 있었다.

5.18 25주년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를 넘어 반미의 성지로 자리매김 되어야 합니다. 광주의 영혼들이 강력한 주한미군 철수투쟁으로 답해야 합니다. 5월 15일 전국의 모든 민중진영이 광주로 집결해 위력적인 투쟁을 전개하고 주한미군 철수투쟁을 중심으로 한 올 한 해 반미자주화 투쟁을 대중적으로 선포하고 힘차게 열어젖혀야 할 것입니다. (증 83호) (전노련 주최 5.18 광주민중항쟁 25주년 정신 계승 국민대회(증 83)

주한미군 철수 한나라당 해체 투쟁으로 5월 정신 계승하자. 80만 광주민중들은 손에 총을 들고 미국의 배후조종을 받는 전두환 일당을 몰아내고 10일 동안 광주를 해방하였으며 우리 민중의 위대함을 세계만방에 알렸다. 5.18 민중항쟁의 정신으로 평화협정체결, 주한미군 철수투쟁과 한나라당의 집권저지에 총 매진하자. (증 85호) (2007.5.18.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의 “5.18 광주민중항쟁 27돌 성명서” 1980년 시민군이 되어 우리민족끼리 미군을 내쫓고 조국통일을 이뤄내는 밑거름이 되고 기관사가 되어 선봉장이 되어야 할 역사적 임무를 부여 받았다. 광주시민군의 정신으로 투쟁할 것을 호소했다.

MB 정권을 반대하는 것이 5월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다. 미국 쇠고기 수입을 막아내고 식량주권, 경제주권을 지켜내자. 이명박정부를 규탄하는 현수막 등 다양한 홍보물들이 대거 쏟아졌다. (증 86호) (2008.5.18. 이적단체로 판결된 범민련 남측본부가 주최하는 6.15 공동선언 고수, 10.4 선언 실천, 미군철수 촉구 5.18 거리행진 행사(증 86호)

범민련 남측본부는 5월 17일 전남대학교에서 금남로 구도청 앞까지 ‘광주항쟁 정신계승! 공안탄압 분쇄! 이명박정권 퇴진! "5.18 자주통일대행진’을 개최했다. (증 87호) 남북관계 파탄주범 MB정권 끝장내자, 이명박정권 몰아내자, 미군없는 평화통일, 이명박 독재타도하자는 5.18 자주통일대행진 기사에는 한반도기 및 ‘3대헌장과 함께 영상화되어 있는 탑은 평양의 통일거리 입구에 2001.8.14 건립된 높이 30m, 너비 6.15m 대형구조물을 반미 반파쇼 투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증 87호) (2009.5.18 범민련 남측본부 5.18 자주통일대행진(증 87호) 5.18 묘지에는 거꾸로 가는 역사의 퇴행을 막고 통일시대를 준비하자, 이명박 퇴진이라는 머리띠를 묘비에 달아 놓았다.( 2010.1.4. 5.18 묘지의 모든 묘비 이명박 퇴진 머리띠 달아 반정부투쟁)

반미 반국군 반정부 이명박정권 타도를 선동하는 북한독재정권과 남한의 5.18 민주화를 빙자한 반미반정부세력과 거의 같다는 것이 단적으로 증명됩니다. 더구나 대법원에서 이적단체로 판명된 범민련 남측본부의 행사에서 미군철수 등 반미반정부투쟁을 벌리고 북한이 촉구하는 6.15선언과 10.4선언을 실천하라는 5.18 행사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은 북한의 반미반정부 5.18사관과 같다는 것이 단적으로 증명됩니다.

[5.18 최대 수혜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5.18 사관]
5.18의 최대의 수혜자로서 대통령까지 당선된 김대중 전 대통령....그는 2006.6.14. 광주에 모여든 북한의 대남조직 간부들, 해외좌파들, 국내좌파들이 총동원된 ‘민족통일대축전’에서 다음과 같은 특별기념사를 했다. “오늘의 이 민족통일대축전의 광경을 보고 망월동 국립묘지에 계신 영령들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틀림없이 자신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면서 오늘의 모임을 축하하고 기뻐하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증 80가)

과연 5.18희생자들이 반미친북자주통일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을까 의문입니다. 김대중의 기념사는 광주영령을 모독하고 조롱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2008.1.27.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을 다녀온 민노당 강기갑 대표의 예방을 받고 민노당과 민주당이 굳건히 손잡과 시민단체 등과 광범위한 민주연합을 결성해 이명박정권의 역주행을 저지하는 투쟁을 한다면 성공할 것이라고 반정부투쟁을 선동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8.6.4. 서울 도심이 미국 쇠고기 파동으로 무법천지가 되었을 때 폭력시위 반정부투쟁을 선동했습니다. (증 90호) 2009.6.11. 김대중 전 대통령은 6.15 9주년 기념사에서 “독재자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해서는 안된다. 행동하는 양심들이 들고 일어 나야 한다”라고 반정부선동을 했다. (증 91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반정부선동, 증 90,91호)

“김대중은 대한민국 편이 아니었다”는 네이버뉴스 업코리아 기사(증 93호)에 의하면 파이낸셜 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에 대해 “영리하고 솔직한 사람이며 한국과 세계문제에 정통해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또 “김정일은 끈질긴 개혁가로 북한을 냉전시대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끈기있게 노력하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반면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의 권위주의 정부가 경제성장을 가져오기는 했으나 그것은 혹독한 대가를 요구한 불균형 성장이었다”고 혹평했다. (증 93호)

국제사회에서 인권탄압과 범죄집단으로 악명높은 김정을 극찬한 것과 대조적으로 잘못이 적지 않지만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발전으로 민주화의 기반을 조성하고 전세계 개발도상국의 견학대상이 되게 한 박정희 정권을 혹평한 김대중의 사관이야 말로 대단히 편견에 치우친 위험한 사관입니다. 1998년 8월 30일 조선일보는 뉴욕타임스 기사를 인용하여 북한이 핵무기 제조공장을 건설할 의도가 있다는 비밀내용을 김대중 정부에 제공해 경고했지만 김대중 정부가 묵살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증 97호)

남북정상회담으로 평양을 다녀온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1년 “북한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개발할 능력도 없다. 그래서 대북지원금이 핵개발에 악용된다는 말을 터무니 없는 유언비어다. 내가 책임지겠다” (증 96호) 하지만 북한은 이미 핵실험을 했고 핵보유를 공개적으로 국제사회에 발표했다. 김 전 대통령 햇볕정책 퍼주기로 북한의 핵개발을 비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의 말 대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고소인 대표 5.18 부상자회 신경진 회장의 5.18 사관]
고소인 신경진은 악성 유언비어는 사실이 아니거나 극소수의 공수부대의 거친 진압이 입을 건너 와전되었을 것이라고 하거나 5.18 민주화투쟁에서 미국은 방관자라고 증언하였습니다.
그의 증언은 유언비어가 사실인 것처럼 공수부대의 만행을 매도하고 미군철수와 반미자주통일을 위해 투쟁하자고 선동하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행사를 하는 범민련, 민노총 등의 단체와 대조적인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합니다. 하지만 그는 탈북자들의 기자회견과 저서를 조사도 해 볼 필요도 없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낭설이라면서 5.18 때 북한군이 개입한 사실이 없다고 단정하고 국군이 5.18 학살의 주범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

심지어 님을 위한 행진곡을 5.18 민주화운동의 추모곡이라고 미화 찬양하고 자유를 찾아 한국에 온 탈북자들을 조국을 버린 배신자라고 하다가 변호인의 반대신문으로 갑자기 발언을 취소하는 해프닝을 벌린 것은 그의 기본적인 생각이 반미반정부선동을 해왔던 반미친북 이적단체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황석영이 북한에 가서 5.18 시나리오를 만들어 북한의 5.18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를 제작한 영화의 주제가입니다.

북한의 5.18 영화는 미국대사가 한국군부에 광주시민을 사살하라고 명령하거나 광주시민 70%를 죽여도 좋다, 젊은이는 모조리 죽여라,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씨말리려 왔다, 공수부대원들을 몇일씩 굶겨서 환각제를 타마시게 해 광주시민을 무차별사살하게 했다, 광주시민 2천명을 사살했다는 등으로 미국과 국군과 한국정부를 5.18 광주학살의 주범으로 날조 과장했습니다.

반미친북 반국군 반정부 영화인 북한 5.18 영화의 주제가 ‘님을 위한 교향시’를 5.18 추모곡이라고 하는 것은 5.18때 희생된 영령을 모독하고 조롱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5.18 사태보다 훨씬 더 인권유린이 심한 북한의 인권탄압에 침묵하는 5.18 단체들, 정의구현사제단, 5.18 기념행사단체들, 북한인권을 탄압하는 북한독재정권은 과연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를 자격이 있습니까? 또한 고소인들을 대표한 고소인 신경진은 변호인의 반대신문에서 5.18 단체가 북한의 인권탄압을 규탄하거나 북한인권운동을 한 적이 없었다고 자인했습니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 기념행사를 하는 단체들도 모두가 북한인권탄압에는 비겁하게 침묵을 지킵니다.

북한의 인권탄압의 실상은 광주 5.18 사태보다 훨씬 더 심각합니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도 비교적 건전한 종교지도자로서의 지도력을 발휘하는 정진석 추기경에 대하여 물러나라는 항명을 하지만 광주 5.18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북한의 인권탄압에는 비겁하게 침묵을 지킵니다.

광주 5.18 사태보다 훨씬 더 심각한 인권탄압을 하는 북한독재정권에 침묵하는 단체나 지도자는 북한독재정권은 모두가 다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를 자격도 없습니다. 북한전역에는 김일성 동상은 알려진 것만도 3만8천개. 1972년 만들어진 대표적인 평양 만수대 김일성 동상은 37kg의 금이 입혀진 초호화판...김일성 시신을 안치하는 김일성 궁전을 짓는데 8억9천만불 한국돈 1조원이 낭비되었다. 북한 최대의 명절 태양절은 김일성 생일. 생일축하행사 비용이 450억원. 김일성 우상화에 들어가는 예산탕진으로 수백만명의 북한주민이 굶어죽어갔습니다. (증 101호, 한진식. 그곳에는 사랑이 없다. 북한인권유린실태. JESUS ARMY 2010년 12월 호 15)

북한은 전세계에서 기독교 박해국 1위이고 미국과 일본에서는 북한인권법이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고 유럽연합과 유엔은 북한의 인권탄압을 규탄하는 결의를 하였습니다. (참고자료 JESUS ARMY 북한구원 지저스아미 2010년 12월 호. 이용희 교수, 북한땅에서 찢겨지는 예수님의 몸 pp4, 5, 정한나 기자, 북한인권 ‘대사’ 수잔 숄티 여사를 만나다, pp19-26, 한진식 기자 북한인권법 국제현황 pp27-31)

191명의 사망자가 난 광주사태보다 훨씬 더 집단학살을 하는 북한독재정권, 천안함 테러와 연평도 포격으로 국제형사재판소로부터 전쟁범죄를 조사받고 있는 북한독재정권이 과연 5.18을 민주화운동, 반미자주통일운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광주사태보다 훨씬 더 집단학살을 자행하는 북한독재정권의 인권탄압에 대하여는 고소인이나 5.18단체나 5.18 민주화운동기념행사를 하는 단체들이 왜 침묵을 지킵니까?

‘북한의 기아사태’의 공동저자인 스테판 해가드 캘리포니아대학 교수와 마커스 놀랜드 한국경제연구소(KEI)선임연구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 정부가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해 90년대에 기아로 100만명이나 목숨을 잃는 20세기 최악의 기아참사가 벌어졌다”고 밝혔고, 기아참사의 원이니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가로막는 폐쇄적인 북한정부의 대응능력 부재였다고 본다면서 참사에 대한 북한 정부의 책임은 인류에 대한 범죄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기아참사를 거치면서 북한 7세 남자 어린이의 평균 신장은 남한과 비교했을 때 20% 작아지고, 몸무게는 40% 가벼워져 일제 강점기의 비극상을 능가할 지경이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북정권, 김정일 사후 붕괴할 수도” “1990년 북한기아참사는 인류에 대한 범죄” 2007.4.3. 중앙일보. 증 125호)

통일연구원이 발간한 2010 북한인권백서(증 126호, pp168-173)에 소개된 북한의 3계층 51개 부류 신분차별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998년 개정된 북한헌법은 평등권을 보장하지만 북한은 1958년 12월 - 1960년 12월에 실시한 중앙당 집중지도사업, 1966년 4월 - 1967년 3월에 실시한 주민재등록사업, 1967년 4월 - 1970년 6월에 걸쳐 조사한 3계층 51개부류 구분사업, 1983년 11월 - 1984년 3월에 걸친 주민증 갱신사업 등이 추진되고 1980년 김정일의 지시로 실시된 외국귀화인 및 월북자에 대한 요해사업에서는 13개 부류가 새롭게 추가되었습니다.

북한당국은 전 주민을 크게 핵심군중(핵심계층), 기본군중(동요계층), 복잡군중(적대계층) 등 3계층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핵심군중(핵심계층) 전체 인구 28%은 노동자, 고농(머슴), 빈농, 사무원, 노동당원, 혁명유가족, 애국열사유가족, 8.15이후 양성된 인텔리, 6.25 피살자 가족, 전사자 가족, 후방가족, 영예군인등이고 이들에 대하여는 당, 정, 군간부 등용, 진학, 승진, 배급, 거주, 진료등에서 특혜조치를 하여왔습니다.

기본군중(동요계층) 전체인구의 45%은 중, 소상인, 수공업인, 소공장주, 하층접객업자, 중산층, 접객업자, 월남자 가족 중농, 민족자본가, 중국귀환인, 8.15 이전 양성된 인텔리, 안일, 부화, 방탕한 자, 접대부 및 미신 숭배자, 유학자 및 지방유지, 경제사범등이고 이들에 대해서는 각종 하급간부 및 기술자 진출 극소수 핵심계층으로 승격하는 조치를 해왔습니다.

복잡군중(적대계층) 전체인구의 27%는 8.15 이후 전락노동자, 부농, 지주, 친일, 친미행위자, 천도교 청우당원, 입북자, 기독교신자, 불교신자, 천주교신자, 출당자, 철직자, 적기관복무자, 체포, 투옥자가족, 간첩관계자, 반방, 반혁명 종파분자, 처단자 가족, 출소자, 정치범, 민주당원, 월남자가족 등이고 이들에 대해서는 유해, 중노동에 종사, 입학, 진학, 입당 봉쇄탄압, 제재, 감시, 포섭대상으로 분류, 제재, 강제이주, 격리수용, 항시 동태감시, 집중적 교양 극소수 계층으로 재분류 등 조치를 해왔습니다.

북한의 인권탄압은 광주사태 보다도 훨씬 심각합니다. 북한의 인권탄압을 개선하기 위하여 미국과 일본의 의회가 만장일치로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고 유엔과 유럽연합이 북한의 인권탄압을 규탄하는 결의를 하는데도 북한인권에 침묵하는 그들이 과연 광주사태를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를 자격이 있겠습니까? 광주사태보다 훨씬 심각한 북한인권탄압을 저지르는 북한이 과연 5.18을 반미자주투쟁이라고 반미반정부반국군선동을 할 자격이 있겠습니까? 그러고도 과연 피고인을 5.18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자격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탈북자들의 기자회견과 저서가 고발하는 5.18 진실에 대하여는 왜 눈과 귀를 막아버리는지 그 이유가 너무나 궁금하고 의문스럽습니다.

[미국 해리티지 재단의 5. 18 사관]
미국의 저명한 보수싱크탱크인 해리티지 재단의 5.18 사관은 북한독재정권이나 5.18단체나 5.18 기념행사를 하는 단체들의 5.18 사관과는 달리 대단히 신중하고 신뢰가 가는 광주 5.18 사태 조명으로 보입니다. 해리티지 재단의 남한 광주사태 재조명(South Korea"s Kwangju Incident Revisited)에 나타난 5.18 보고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증 7호)

5월 18일 전남대에서 수백명의 대학생들이 투석을 하여 군과 충돌하였습니다. 그날 오후 학생들은 당국과 대치가 계속되고 있는 광주시가지로 나갔습니다. 폭력은 다음날까지 확산되었습니다. 시위대들은 경찰재산과 두 개의 방송국을 파괴하고 차량들에 불을 질렀습니다. (On the morning of May 18, several hundred rock-throwing students clashed with troops at Kwangju"s Chonnam university. That afternoon, the students marched into downtown kwangju where confrontation with the authorities continued. Violence escalated the next day, when the demonstrations vandalized police property and two television stations and set fire to a number of vehicles)

충돌의 첫단계는 경찰, 군당국, 데모자들 사이의 치열한 주먹싸움이었습니다. (This initial stage of the trouble was characterized by fierce hand-to-hand fighting between police and military authorities and demonstrators). 많은 시위자들은 돌과 파이프로 무장되었고 지극히 적대적이고 공격적이었습니다. (Many demonstrators were armed with rocks and iron pipes and were extremely hostile and aggressive)

다수의 관찰자들은 경찰과 군대의 과도한 야만성을 규탄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관찰자들은 대부분 군부는 폭도들과의 공개적인 대결을 피했다고 지적했습니다(A number of observers charged the policemen and troops with excessive brutality, but other observers noted that "for the most part, the army avoided an open fight with the rioters) 서로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지만 대결 이틀 동안에 두명의 폭도들만 살해되었습니다. (There were many injuries on both sides, but only two rioters were killed during the first two days of the confrontation)

폭동 첫날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들을 죽이려왔다. 실제로 아무도 죽지 않았는데도 첫날 투쟁에서 40명이나 죽었다는 보도가 나갔다. 심지어 김대중이 이미 처형되었다는 말도 퍼졌다. 사태를 악화시킨 가장 괴상한 루머는 광주에 군인들이 파견되기 전에 몇일동안 굶겨서 환각제를 먹였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사실이라고 믿게 된 학생이 아닌 많은 시민들도 폭도들을 동정하도록 부추겼다. (On the first day of the riots, the rumor spread that soldiers of Kyungsang Province had come to kill the Cholla people. There were reports that as many as 40 people had been killed during the first day of strife; in fact, no one had been killed. Some residents were told that Kim Dae Jung had been executed. The most bizarre rumor was that, to make them more fierce, the troops had been starved for several days and given drugs before coming to Kwangju. Some of these tales were believed by residents, prompting many nonstudents to sympathize with the rioters)

해리티지 재단의 보고서에 의하면 처음엔 격렬한 몸싸움이 있었지만 인명피해가 적었고 군부도 가능한 한 대결을 피했는데 근거가 없는 괴상한 유언비어로 학생들에 이어 시민들까지 폭동을 부추긴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남한 전라도에서의 무고한 대학살 5월 사태는 한국정부의 계획된 음모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 아닙니다. 미국이 개입한 것도 아닙니다. (The event of May 1980 were not a deliberate plot by the ROK government to massacre innocent civilians in South Cholla Province. Nor was the U.S. involved in the incident)

폭동의 규모에 비해 사망자수는 현저히 적었다는 사실은 한국정부가 피해를 최소화할려고 했다는 것을 반영합니다. 광주에서 일어난 사태를 계속해서 왜곡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의문입니다. 그들은 상처가 치유되기를 막고 한미간을 이간질하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대조적으로 한국정부는 광주사태를 진정시키고 물리적인 그리고 정서적인 상처들을 치유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The events of May 1980 were not a deliberate plot by the ROK government to massacre innocent civilians in South Cholla Province. Nor was the U.S. involved in the incident. Given the extent of the insurrection, the death toll was remarkably low - a fact that reflects the ROK government"s efforts to minimize casualties. Those who continue to distort what happened at Kangju should have their motives questioned. They seem determined to prevent the wounds from healing and to drive a wedge between the U.S. and the Korean people. The ROK government, by contrast, has been trying to put the Kwangju incident to rest and th heal the country"s physical and emotional wounds)(증 7호)

해리티지 재단의 보고서는 5.18 광주사태의 비극이 근거 없는 유언비어에 의하여 악화된 것을 표현했고, 한국정부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5.18 특별법에는 북한의 5.18 사관과 5.18 민주화운동행사를 주최해온 이적단체들의 5.18 사관과 같이 한국군과 한국정부가 마치 살인정권인 것처럼 조작했습니다.

해리티지 재단의 보고서에 의하면 광주에서의 대부분의 피해의 원인은 중무장한 양쪽 진영간의 격렬한 싸움이었지 거리에서 군인들이 무고한 시민들을 살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Most casualties in Kwangju resulted from fierce fighting between two heavily armed camps and not from innocent citizens being cut down in the streets by troops)라고 하여 마치 공수부대가 무차별로 광주시민을 사살해 대부분의 피해가 발생하였다는 광주민주화운동측과 북한의 주장이 사실과 다름을 밝혔습니다. 해리티지 보고서는 이미 오래전에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본 변론으로 처음 공개되어 진실규명이 지연되었습니다. 대단히 신중하고 객관적인 5.18 사관이라고 하겠습니다.

[북한특수군 탈북단체 자유북한군인연합의 5.18과 김대중에 대한 사관]
5.18때 북한특수군으로 광주에 파견해 북한지령대로 광주시민을 사살한 탈북자 정 아무개의 5.18 사관...탈북자들은 한국으로 귀순하여 한국의 국정원이나 수사기관에서 5.18때의 북한군 침투개입을 솔직히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증 26호, 76호)

“1980년 5월 18일 광주봉기에 직접 참가하고 북한으로 돌아갔다가 지금 다시 남한에 내려와서 소문 없이 조용히 살고 있는 50대 남성분을 만나 보았던 일이 있습니다. 그는 현재 신변상의 문제로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많이 꺼리고 있습니다. 2006년 남한에 와서 처음으로 합동조사반에서 조사를 받을 때 그는 자기가 1980년 5월 18일 광주사건 당시 북에서 임무를 받고 내려왔었다고 그 때의 상황에 대하여 조사관들에게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의 이야기를 듣던 조사관들의 입에서 앞으로 그런 쓸데없는 말을 두 번 다시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협박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한다.” (증 26호 196-197)

증 26호에 의하면 탈북자들이 5.18 진상에 관하여 5.18때 북한군이 대거 침투해 간첩이 미리 조사해준 무기고 위치자료로 순식간에 무기고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하고 영호남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악성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시민과 여자를 총살하거나 잔인하게 죽이고서는 마치 국군이 죽인 것처럼 날조해 호남과 한국군과 한국정부 사이를 이간질해 싸우게 하는 전법으로 김대중 친북정권을 세우기 위한 대남공작 군사작전을 벌렸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광주사태 상황일지 및 피해현황’ 보고서(증 8호)에 의하면 총상 사망자 116명 중 계엄군 M-16 소총으로 사망한 사람은 36명 뿐이고 나머지는 무기고에서 탈취한 무기에 의해 사망했다고 진술합니다. 하지만 지난 좌파정권의 국정원과 수사기관은 그런 소리하다가는 탈북자로서 받는 혜택도 누릴 수 없을 것이고 쥐도 새로 모르게 없어질 것이라고 협박했습니다.

때문에 탈북자들이 용감하게 고백한 5.18 진상은 수사기관의 협박으로 묻혀져 왔습니다. 진실을 들어야 할 의무가 있는 공권력이 유감스럽게도 진실의 소리를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북한군 특수부대 출신 탈북자들은 2005년 12월 북한을 자유민주주의사회로 해방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탈북단체인 자유북한군인연합(임천용 대표)을 조직하였고 2006년 기자회견(증 11호)과 최근 저서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증 26호)을 통해 5.18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가 한국군이 아니라 한국에 대거 침투한 북한군의 대남공작 군사작전이라는 위와 같은 5.18 진상을 폭로했습니다.

실제로 5.18 광주사태 때 북한특수군으로 광주에 내려왔다가 북한으로 돌아가 다시 탈북자로 한국에 온 정 아무개를 만나 조사를 한 국가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 5.18 실체규명진상조사위원장인 자유시민연대 류기남 대표는 법정증언에서 조사결과를 다음과 같이 진술했습니다. 5.18때 정 아무개가 북한특수군으로 공해상인 서해로 큰 배로 온 다음에 작은 배로 조를 나누어 북한 특수군 600명이 해안에 상륙하여 광주로 갔다. 소지한 총도 북한에서 왔다는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하여 한국의 칼빈총과 똑 같은 칼빈총을 가지고 왔다. 북한의 지령대로 광주시민을 사살하고 다시 북한으로 갔는데 갈 때는 바다를 피하고 육지로 갔다.

광주사태때 한국에 와서 죽은 북한특수군은 영웅칭호와 훈장을 김일성으로부터 받았고 매달 대대장 월급보다 더 많은 보상금을 받았다. 정 아무개의 발언 즉 600명이 광주에 파견된 것과 관련하여 제199지원단 제1훈련소의 무기고를 습격한 집단의 수를 600명이라고 표시한 북한의 책 ‘광주의 분노’(증 38호, 37-38)과도 같습니다. 광주에 파견된 북한특수군 600명의 수와 같고 탈북자들의 기자회견과 저서(증 26호, 76호)에서 북한군이 무기고를 급습했다는 것과 같습니다.

증8호(55-65쪽)에 의하면 17개군에 산재한 38개의 무기고가 1980년 5월 21일 12시부터 16시까지 4시간대에 5,403정의 총기를, 화순광업소에서 8톤 분량의 TNT, 뇌관, 도화선 등을 동시다발로 탈취한 것은 과연 순진한 시민군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고 탈북자들의 증언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5.18 광주사태때 북한군의 침투개입 논쟁을 철저히 폐쇄하고 미국 연방대법원판시와 같이 ‘숨 술 공간’을 주지 않는다면 북한도발 진실규명은 숨겨지고 은폐되어 또 다른 도발을 초래할 것입니다.

5.18 사태의 성격에 관하여 자유북한군인연합 임천용 대표는 “광주사태의 발단과 시발점은 민주화봉기였다고 인정하지만 수많은 인명이 무참히 살상되고 끔찍하게 도륙당한 유혈적인 사건은 김정일정권에 의해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테러행위”라고 밝혔습니다. (증 11호)

그는 그 증거로 당시 봉기상황이 북한으로 실시간 생중계된 것, 봉기자들이 뒤에서 총에 맞아 죽인 것, 현재까지 미해명으로 남아있는 신원미상자, 전기톱에 의해 두개골이 파괴된 시체, 봉기군이 봉기군을 사살한 것, 봉기군의 아지트와 봉기군이 탈취한 탱크, 장갑차, 운전기재안에서 대량발견된 술병의 진의, 방위산업체, 감옥, 방송국등 국가기관 점거와 군능력을 초월해 전면전을 불사한 것을 증거로 들었습니다. (증 11호)

탈북자들이 광주사태에 대한 증언록을 출판하게 된 중요한 동기에 관하여 증 26호 증 76호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 저서 머리말에서 분명히 했습니다. ‘김영삼 정부가 5.18 광주사태 전반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과학적인 근거를 전제로 해서 이 사건을 정당하게 민주화 항쟁이라고 새롭게 정정한 것이 아니라 김대중 세력과의 변칙적인 타협과 제휴, 모종의 커넥션을 바탕으로 5.18 광주무장폭력사태에 분칠을 하였고 민주화의 옷을 입혀주었다고 할 수 있다.’(증 26호 5쪽)

‘5.18의 본질은 북한정권과 그들의 사주를 받고 행동한 남한의 치밀한 배후세력만 알 수 있다. 민주화를 위해서 길거리에 나섰던 광주사람들 자체도 사건의 깊숙한 내부에 은폐되어 있었던 속사정을 근본적으로 알 수 없는 그런 사건이었다. 정체가 숨겨진 5.18의 내막은 남한 땅에 북한공화국 정권을 세우려고 했던 김대중과 같은 반국가적인 친북세력들이 영남과 호남의 알력과 마찰을 의도적으로 조성하면서 광주사태를 자기들의 정치적 목적과 기반에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했던 사건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5.18 광주사태는 남한 내부의 교란을 대남전략의 주요 목표로 삼고 있는 북한정권에 의해서 빈틈없이 설계되었고, 그들의 주특기라 할 수 있는 배후교란작전의 작품이 광주를 명중시킨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증 26호 9-10쪽)

‘자유북한군인연합이 광주사태에 북한에서 파견된 특수부대요원들이 침투하여 배후 교란작전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5.18 관련단체가 한국사회를 파괴하기 위한 불순한 행동이라는 죄명을 씌우기도 하였다.’(증 26호14쪽)

‘5.18 광주사태의 진실을 따지는데 중요한 문제는 민주화라는 부분보다 어떤 의와 목적에 의해서 선량한 민주화 시위가 무장폭동으로 변질되었고 순수하고 죄없는 무고한 생명들이 누구의 작품에 의해서 군중을 자극하고 선동하는 제물이 되어 잔인하게 학살당했는가 하는 것이다. 정당하게 민주화로 인정받으려면 어두운 베일에 가려져서 현재까지 바깥구경을 못하고 깊숙이 묻혀 있는 내용들이 한 점의 의혹도 없이 투명하게 밝혀져야 한다.’(19쪽)

‘광주사태를 국가적인 관점에서 지혜롭게 풀어가려면 북한의 김정일정권과 그들이 파견한 북한특수부대요원들, 김정일의 하수인이라고 할 수 있는 김대중을 비롯한 남한의 소수 불순분자들에 의해서 사건이 대학살의 현장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우선 구체적으로 이해시키고 광주에서 희생된 불행한 사람들을 위로하며 그들의 넋을 국가와 국민의 차원에서 의미 깊게 기려야 한다.’(20쪽)

‘평범한 시위를 국가전복에 이용하려고 시도했던 북한군특수부대요원들과 내부의 불순분자들, 여성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시체를 도륙하고 광주현장을 연출하고 정권에 평화적이던 광주시민들의 감정에 불을 질렀던 자들을 비롯해 주동분자를 골라내어 심판대에 세우고 애매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없도록 하는 것이 국가를 위해서도 능사이고 현명한 방법이다.’ (20-21쪽)

‘중요한 것은 친북좌파세력들이 5.18이라는 위장된 아지트를 이용해서 대한민국이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서서히 북한쪽으로 이동시키고 있고 국민들의 행동반경에 장애를 조성하고 있다는데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있다. 5.18 사태가 민주화항쟁으로 살아남게 되면 김대중을 비롯한 친북세력들이 살아남게 되고 5.18광주사태가 겉옷을 벗고 속살을 드러내면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자유민주주의가 살아남게 된다.’ (29쪽)

‘북한의 인권해방과 민주화를 위하여 죽어야 되는 일이라면 우리는 얼마든지 피하지 않고 망설이지도 않으며 맞받아 나갈 것이다. 우리는 탈북자로써 지는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싸움을 하고 있으며 열 백번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무조건 싸워서 이길 것이다. 김정일 정권에 의해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불쌍한 광주영령들에게 이 기회를 빌어 다시 한 번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는 바이다’(30쪽)

고소인 신경진은 간첩 이창용은 조작된 것이라고 하나 간첩 이창용이 체포되어 그의 자백으로 북한 간첩 10여 명이 체포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고소인 신경진이 북한에 간 윤기권은 정신이 모자란 사람처럼 증언하지만 전혀 사실과 다르다. 그는 북한에 가서 영웅대접을 받았고 정신이 모자란 사람이라면 영웅대접을 받을 정도로 북한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간첩 이창용과 5.18 보상금을 받고 북한으로 간 윤기권에 관한 내용은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 제3판(증 76호) 끝 부분에 수록되어 있고 고소인의이 부분 증언은 거짓말임이 명백합니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이영조 위원장의 5.18 사관]
대통령직속기관인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이영조 위원장께서 “5.18은 민중반란(a popular revolt)이라고 하고 4.3은 ”공산주의자가 주도한 모반, 폭동“이라고 규정하는 논문을 국제학술회의에 발표를 했고 논문은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내부 논의와 위원장 결재를 거쳐 만든 것이라고 보도되었습니다. (증 77호) 개인적인 5.18 사관이 아닌 대통령 직속기관인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5.18 사관이고 이영조 위원장은 미국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정치학 박사입니다. 피고인이 5.18의 진실과 관련하여 1980년대 대법원판결에 동의한 것이나 제주 4.3 사태가 북한 공산주의자의 모략전으로 해석한 공소장 기재의 ‘5.18의 진실’ 머리글 부분은 대통령 직속기관인 진실과 화해위원회의 5.18 사관과 제주 4.3 사관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미국 해리티지 재단이 5.18을 uprising(반란, 모반), insurrection(폭동, 반란, 모반), riot(폭동, 반란), rebellion(모반, 반란)으로 표현한 것(증7호)이나,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5.18을 a popular revolt(민중폭동, 민중반란)이라고 표현한 것(증77호)이나 피고인이 5.18에 관하여 1980년 대법원판결에 동의한 것은 모두가 비슷한 표현이지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국가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와 한미우호증진협의회의 5.18 사관]
광주 5.18 기록을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청원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듣게 된 국가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와 한미우호증진협의회 한국지부는 유네스코에 긴급히 5.18 기록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청원을 유럽에 본부를 둔 유네스코에 보냈습니다. 유네스코에 보낸 5.18 기록 세계기록유산 반대취지의 영문과 한글로 된 청원은 국가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와 한미우호증진협의회의 5.18 사관으로서 변호인이 영문과 한글로 작성한 것인데 그 내용은 별지(생략)와 같습니다. (끝)

-뉴스앤 뉴스-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