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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뉴스

대남공작 총책의 서울2박3일 의미를 짚어본다

대남공작 총책임자가 대선때 공장보러 왔나?

1997년 가을 제15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후보와 그 측근들은 매우 빈번히 서울과 베이징(北京)을 드나들고 있었다. 김대중후보는 새정치국민회의(국민회의)의 총재였다. 국민회의의 조직국장 조만진과 중국공산당원, 조선로동당의 첩자 허만웅 등은 서울-베이징-평양 등지를 드나들며 무언가를 열심히 획책하고 있었다.

갯벌에서 꿈틀거리고 나오는 맛조개처럼 나타난 김양건

현국가정보원(국정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그들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안기부의 李大成(이대성) 북한실장은 이른바 "이대성파일"을 작성했다. 김대중과 국민회의와 조선로동당의 동향과 관계를 집대성 한 극비 정보문서였다.

만약에 김대중이 낙선하고 이회창이 당선됐엇다면 "이대성파일"은 김대중과 국민회의를 고발하고 기소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김대중이 몽매에도 잊지못할 대통령직에 앉게 됐고, "이대성파일"은 압수되고 이대성 북한실장은 그 上司(상사)인 權寧海(권영해) 안기부장과 함께 재판이라는 절차를 거쳐 투옥되고 말았다. 이대성은 1년 유여만에 풀려났지만 권영해는 10여년째 아직도 囹圄(영어)의 몸이다.

그로부터 10여년. 2007년 11월 하순.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선거를 2주남짓 앞둔 시점에서 제2의 이대성파일을 엮고도 남을만한 북풍이 불고 있다. 동서 냉전시대의 철의장막 이상의 두텁고 단단한 장막에 가리워진 남북 양정권의 막후 거래와 交接(교접)은 알도리가 없다.

그런가운데서도 갯벌속에서 꿈틀거리고 나오는 맛조개처럼, 그래서 사람의 손에 잡히는 것처럼 남한이라는 갯벌에서 준동하는 공산당의 움직임이 잡혔다. 조선로동당 통일 전선부 부장 직함의 김양건이라는 인물이 갯벌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가공할 조직과 파괴력 겸비한 민민전

통일전선부는 널리 알려진대로 조선로동당의 대남공작부다. 그 산하에는 유명무명의 조직이 있으며, 그중 에는 버젓이 지상에서 움직이는 것도, 은밀히 지하에서 준동하는 것도 있다.

민주주의민족전선(민민전)이라는 조직은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45년 8.15해방직후부터 조직된 민민전은 문어발같이 多岐多樣(다기다양)하고 또한 한번 감으면 놓지않는 강력하고도 거대한 힘을 가진 조직이다. 해방후 6.25남침이 있을때까지 민민전은 그 산하에 20개 단체 7백97만7천2백80명의 조직원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 주요 정당·사회단체로는 朴憲永(박헌영)의 조선공산당(105,081명), 呂運亨(여운형)의 조선인민당(170,000명), 白南雲(백남운)의 조선신민당(180,000명), 金元鳳(김원봉)의 민족혁명단(4,500명), 白庸熙(백용희)가 이끄는 전국민농민조합연맹(353만명)…등이 있었다. 여기서 전국농민조합연맹의 353만명은 공산당이 당시 대부분이 문맹인 농촌 사람들에게 양곡배급을 준다고 속여 백지에 도장을 받아 만든 조직원이 대부분이다.

이밖에 해방직후 좌익들이 재빨리 조직한 120만명에 달하는 재일본조선인연맹(朝聯=宋性澈) 조직원수도 국내에 實在(실재)하지 않은 허수다.

따라서 당시 국내에 조직된 순 공산당과 조익 조직의 총수는 농민과 재일조선인 조직을 제외한 약3백24만명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 어쨌든 그 당시나 지금이나 "민주주의민족전선"은 가공할 조직과 파괴력을 겸비한 공산당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내부·보수야당 깊숙이까지 침투한 좌익 지하단체 요원들

민민전은 그후 여러 경위와 곡절을 거쳤지만 김대중정권 등장이후 한국에서 매우 크고 영향력 있는 조직이다. 이것을 직접 조종하는 기구가 조선로동당의 통일전선부다. 다만 민민전은 있고도 없고, 없고도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1975년 4월 자유베트남이 패망하기 직전까지 猛威(맹위)를 떨치며 "있고도 없고, 없고도 있는" 幻覺(환각)의 조직 베트남민족전선(FLN), 일명 베트콩과도 같다고 할 것이다. 민민전은 불법조직이다.

그러나 그 산하에는 불법(지하)조직이었다가 합법(지상)으로 인정받은 조직들이 많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이 그 대표적 존재다. 이 조직은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지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순지하조직이었다.

전국연합이 1991년 12월 1일 서울에서 결성되자 91년 1월 1일 평양의 한민전(韓國民族民主戰線) 중앙위원회는 신년 메시지를 통해 "애국적 민주세력이 단합해야 할 모체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다"고 역설했다.

한민전은 어떤 단체인가? 간단히 체계화하면 그 정점에 조선로동당이 있고 당내 대남담당비서(3국청사)가 있으며 그 직속예하에 남조선내지하당인 한민전이 있다. 한민전은 일본과 전라남도 광주와 유럽 및 캐나다에 각각 대표부를 두고 있다. 그 산하에 민족해방통일전선이라는 본부조직이 있는데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은 그 직속기구다.

이 전국연합에 가입한 단체가 27개인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와 한총련(한국대학생총연맹)을 들 수 있다.

수도서울을 비롯한 경기남부와 경기북부연합, 인천·부천연합, 대전·충남연합, 광주·전남연합, 전북연합, 경남연합, 대구·경북연합, 익산연합, 제주연합 등 12개 지방연합이 있으며 민노협, 민교협, 민예총 등 노동·교육·문화에술분야에도 단단한 조직은 견지하고 있다. 심지어는 보수야당 속에도 깊숙이 침투하여 주요 지방자치 단체장을 배출하기도 했다.

이들은 대한민국내 친북좌익정당의 전위대같은 역할을 한다. 또 조직중앙의 핵심인물들은 김대중·노무현정권의 권력 내부 깊숙이 침투·암약하고도 있다.

"대남공작 총책임자가 대선때 공장보러 왔나?"

전국연합의 총책임자였던 이태복이 국회의원으로, 사무국장이던 황인성이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지낸 것은 표면에 나타난 극히 일부로 보여진다. 결국 조선로동당의 직속기구의 간부가 대한민국 정치 권력의 중심인 청와대와 국회에 버젓이 들어와 앉았어도 아무도 아무말도 못하는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이러한 상황아래 전국연합을 지휘통솔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부장직에 있는 김양건이라는 사나이가 버젓이 나타났다. 하기야 김양건이 처음은 아니다. 김대중정권당시 역시 김정일 정권의 제 2인자요 대남공작 총책이었던 임동원의 융숭한 대접을 받아가며 서울에서 제주도까지를 누비고 다녀갔다.

그러나 김양건의 방문은 그 시기로 보아 심상치 않아 보인다. 그가 서울에 온 11월 29일에는 돌아간 12월 1일까지는 제17대 대통령선거를 불과 3주일도 안남긴 중요한 시기였다. 그는 오자마자 인천 송도의 신도시 개발 현장을 가보고, 이튿날엔 거제도의 대우조선소등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리고 30일 오후에는 청와대를 찾아가 대한민국 대통령과 50분간 회담을 했다고 신문들은 보도했다.

그는 과연 남주홍 경기대교수 말(조선일보 12월 1일 A2면)마따나 "대남공작 총지휘자가 공장을 보러 왔겠나"하는 의혹을 사고 있다. 공개된 일정만을 보면, 엊그제 북측의 총리가 둘러보고 간것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숙소인 워커힐에서의 통일부장관과의 면담이나 청와대에서의 대통령과의 면담 말고도 알려지지 않은 비밀일정이 주목되지만 당장은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의 관심의 초점은 대한민국 제17대 대선에 대한 조선로동당의 관심과 간섭의 度數(도수)다. 조선일보는 11월 29일자(A4면)에서, 통일부장관의 말을 인용, "정상회담, 총리회담을 해도 대선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김양건의 공개된 행적은 假面이다

그 말은 맞을지 모른다. 노동당의 통전부장이 서울을 방문했다는 것 자체가 무슨 영향을 미칠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는 그의 남한에서의 행적이다. 공개된 행적은 인천 송도의 신도시 개발현장 방문(이것은 소위 서해평화협력지대와 관련되었다고 한다)과 거제의 대우조선소(이것은 대북조선사업과 관련있다고 한다)방문, 그리고 청와대 예방 뿐이다.

그러나 김양건의 공개된 행적은 假面(가면)으로 밖에 안보인다. 신문들은 김양건이 "대선탐색" 또는 "정권교체후에도 남북간의 합의들이 계속 유지될지 여부를 직접 탐색"이라는 것으로 추측했다. 하지만 그정도의 임무라면 대남총책이 직접 나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통전부장은 우리대선에 직·간접으로 영향할만한 모종의 案(안)을 갖고 왔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 원고는 투표일을 불과 2주일 남짓 남긴 시점에서 집필하고 있다. 그 기간에 일어날 여러 가지 변수는 김양건의 서울 방문과 관련이 없을 수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목에 걸린 가시처럼 우리의 신경을 건드리게 하는 것은 한나라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직후인 8월 29일 후보로 당선된 이명박씨의 선대위 조직본부장이던 정병국의원이 중국 베이징에서 통일전선부 요원과 만났다는 사실이다. 중아일보 9월 5일장에 따르면 정의원은 지난 7월 통일부에 북한주민접촉 신고서를 제출, 8월 29일에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통일부에 신고할때는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민화위) 인사를 만난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통일전선부 소속 요원과 만났다는 사실이다.

통전부와 노무현과 민주신당 그리고 한나라당의 연결고리?

이같은 일은 1990년대 초에도 있었다. 당시 김대중씨가 만든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사무총장이던 曺映煥(조영환=김정일 전문가·작고)씨는 평양에 가 김정일을 만날 생각으로 그 중간에서 주선 하겠다는 재일조총련 인사와 베이징서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베이징에 가보니 북측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이라는 전금철이 조씨를 만나자고 연락해 왔다. 조총련 인사는 간곳이 없었다. 조씨는 연구 목적으로 만나려던 김정일 대신 북측 아태평화위원 전금철을 만나 김대중의 심부름만 하고 돌아왔다.

한나라당의 정병국의원도 원래는 조평통 사람과 약속됐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북한의 주무대인 베이징에서는 그들 마음대로 대남공작부서인 통전부 요원이 정의원을 만났는지 모른다.

그 최고 우두머리가 대선을 삼주일 앞두고 서울을 다녀갔다. 통전부와 노무현정부,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 그리고 이명박 후보간에는 무슨 연결고리가 있었을까? 만약 그런게 있었다면 어떻게 작동되어 있을까?(자료:한국논단 2월호)

이도형 한국논단 발행인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