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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뉴스

12.12,우발적이었나 계획적이었나(맛보기)

12.12는 사전에 계획된 쿠데타였는가, 우발적인 사건인가?

1989년12월31일, 그는 백담사에서 나와 국회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하여 “12.12는 정당한 임무를 수행하다가 발생한 우발적인 사건이었다. 그것이 계획된 쿠데타였으면 그 즉시 내가 권력을 잡고 대통령이 되었어야 하지 않느냐?” 이 말에 야당 의원들이 격분하여 청문회장은 고함과 욕설과 삿대질로 아수라장이 되었고, 그 중에는 “회개해” 하는 소리가 여러 차례 들렸다. 양심도 없이 둘러댄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청문회는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지금도 인터넷을 보면 “12.12가 우발적?”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하여 전두환이 마치 해서는 안 될 거짓말을 한 것으로 비난하고 이에 대한 증오심들이 표출돼 있다.

12.12는 쿠데타를 일으키기 위해 사전에 계획된 것인가? 아니면 전두환의 주장대로 합수부위 정당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인가?

12.12사건은 정승화의 연행, 30경비단에서의 장군모임, 대통령 재가, 윤성민-장태완의 병력동원 및 공격명령, 장태완-윤성민-정병주의 체포, 합수부의 병력동원들로 구성된다.

정승화는 김재규와 관련하여 조사를 받아야 할 만큼 의심스러운 행동을 했다. 그를 조사하려면 연행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를 방치하면 김재규에 대한 재판을 제대로 할 수 없어 보였다. 정승화의 연행에 대해 노재현 국방장관에게 사전 승인을 받는 다는 것은 매우 무모한 바보짓이었다. 노재현과 정승화는 당시 밀착하여 정국을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승화에 대한 연행은 대통령 결재를 전제로 했으며, 대통령이 허락할 것으로 확신했다. 대통령 재가가 늦어진 것은 노재현 장관이 직무를 포기하고 도망만 다녔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은 노재현 장관이 나타나자 금방 결재를 해주었다. 대통령이 결재를 했으면 연행의 정당성이 인정된 것이다. 이런 사실들만 보면 정승화 연행이 하등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역사바로세우기 1심 재판부는 네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첫째, 연행의 동기가 불순했다는 것이다. 신군부가 군권을 잡기 위해 정승화에게 무고한 죄를 뒤집어 씌웠다는 것이다.

둘째, 대통령에게 사전재가를 받지 못하고, 당시 대통령이 주재하던 ‘총리공관’을 대통령경호실 병력으로 삼엄하게 에워싸고 6명의 장군들이 늦은 밤에 집단으로 들어가 외포감(공포감)을 줌으로써 대통령은 대통령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상태에서 강제로 받아낸 것이기 때문에 무효라는 것이다.

셋째 30경비단에 불법적인 지휘소를 설치하고, 윤성민-장태완으로 이루어지는 정식지휘계통을 와해시켰다는 것이다.

넷째, 공수부대, 9사단, 30사단, 2기갑여단 등을 불법 동원하여 군권을 완전하게 장악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쿠데타를 하기 위해 사전에 세밀하게 계획한 불법행위라는 것이다.
반면 12.12사건을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어떤 논리가 내재해 있는가?

첫째, 대통령이 ‘직보’라는 관례를 잘 알고 있었다면 즉시 서명을 했고, 이렇게 되면 연행 이전에 사전결재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둘째, 노재현 장관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대통령 호출에 즉시 응했다면 윤성민과 장태완이 비상령을 발령하고 병력을 거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셋째, 윤성민-장태완이 병력을 거병하여 위험한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그들을 체포하지 않았을 것이다.

넷째, 장태완이 공격대형을 취하고 위험한 지휘를 하지 않았다면 합수부는 부대장들에게 긴급 출동을 요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승화는 2002년9월25일 발간한 “대한민국 군인 정승화”(도서출판 휴먼앤북스)에서 전두환에 대한 인식을 이렇게 표현했다.

"전두환은 12.12를 통해 정권을 탈취하겠다는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치밀하게 짠 것 같지는 않다. 처음엔 군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육군참모총장을 밀어내고 군권을 장악하겠다는 생각에 일을 저질렀다가 사태가 커지자 사후 안전을 위해 국권까지 탈취하는 데로 치달은, 말하자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외길로 달려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보기에는 정승화의 이 표현은 정직해 보인다. 12.12사건은 정승화 연행-조사라는 합수부의 정당한 임무를 수행하는 데서 발생한 우발적 상황진전이었지 사전 시나리오를 실현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누가 반란군인가?

합수부는 윤성민-장태완 등을 반란군이라 했고, 윤성민-장태완 측은 전두환-노태우-황영시 등을 반란군이라 했다. 재판부는 윤성민-장태완을 정식지휘계통이라 판단했고, 전두환 측을 반란군이라고 판단했다. 군권을 장악하기 위해 무고한 정승화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쿠데타의 시동을 걸었다는 것이다.

재판부의 판결대로 정승화는 죄가 없었고, 최규하 대통령은 무장 군인들에 의해 연금되어 전두환이 시키는 대로 했는가?

필자는 그건 아라고 생각한다. 정승화에게는 죄가 있었고, 최규하 대통령은 노재현에게 꾸중도 하고, 그의 의지대로 노재현이 나타날 때까지 재가를 지연시켰고, 그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결재를 했다. 이를 증언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신현확이 이를 법정에서 증명했다.

증언 내용을 요약하면 위 6명의 장군들은 최규하 대통령에 공손했고, 협박 같은 건 전혀 없었으며, 예의를 깍듯이 갖추어 건의했고, 대통령이 국방장관을 먼저 만나본 후에 결정하겠다고 하자 공손하게 인사하고 나갔다는 것이다. 무장병력이 공관을 포위하고 있는 사실도 몰랐고, 대통령 역시 장군들이나 경비원들로부터 위압감이나 공포감 같은 것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고 했다.

단지 최규하 대통령이나 총리인 자기는 합수부장이 노재현 국방장관의 사전 결재를 생략하고 곧바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것이 절차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군인 출신인 박대통령은 보안사령관의 직보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했지만 민간출신인 최규하나 신현확은 이런 직보의 의미를 모르고 타 정부기관에서와 똑같이 결재라인을 거쳐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당시의 정치판도는 노재현과 정승화가 밀착하게 연계되어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승화에 대한 연행계획을 노재현에게 보고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 것을 이들 민간인들이 알 리 없었을 것이다.

글 : 지만원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