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4 (월)

  • 구름조금동두천 22.3℃
  • 구름많음강릉 23.4℃
  • 맑음서울 22.6℃
  • 구름많음대전 22.8℃
  • 흐림대구 27.4℃
  • 흐림울산 25.4℃
  • 흐림광주 23.4℃
  • 박무부산 21.5℃
  • 흐림고창 21.8℃
  • 흐림제주 24.9℃
  • 구름조금강화 21.9℃
  • 구름많음보은 22.3℃
  • 구름많음금산 21.7℃
  • 흐림강진군 24.0℃
  • 흐림경주시 27.4℃
  • 흐림거제 23.2℃
기상청 제공

안보뉴스

이승만의 건국과 기독교의 영향력

우남 이승만 연구회 제32차 콜로퀴엄 개최

우남 이승만 연구회 제32차 콜로퀴엄 개최

"해방 이후 한국 교회는 반공을 기반으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뿌리내리려는 미군정과 기독교가 이승만과 자유당을 동일시하면서 전폭적인 지원에 나섰지만 이후 1956년을 거쳐 1960년 3·15부정선거로 기독교계는 이승만과 자유당을 별개의 시각으로 보고 침묵을 지키는 경향으로 이어졌다" 고 허명섭(시흥제일교회 담임목사) 서울신학대 겸임교수가 주장했다.

허명섭 교수는 17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사)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우남 이승만 연구회 제32차 콜로퀴엄"에 초청강사로 나서, "이승만의 건국-호국과 기독교 세력"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해방공간과 건국 과정에서 한국의 기독교계와 이승만 박사가 기독교와 반공을 중심으로 가장 밀접하게 연대관계를 유지했다고 밝혔다.


허 교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 패권주의에 대응해 미국의 당면과제는 해외에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확산을 통해 소련의 패권주의 봉쇄와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 기본정책이었다며 한반도 이남에서의 미 군정(美 軍政)의 "반공정책"과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립" 등 대한(對韓)정책을 한반도의 사상적 지형을 중심으로 설명해 나갔다.

허 교수는 "해방 이후 남한에서는 미군정이 들어와 공산주의와는 판이하게 준법을 강조했으며, 이런 와중에 다양한 세력이 존재하고 혼선이 일어남으로써 한반도의 지형자체가 좌파(사회주의)성향으로 크게 기울어져 이미 미군 보고서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한반도에서 공산당 활동이 이루어지기 쉬운 곳"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우파세력은 정치적으로는 한민당이, 종교적으로는 기독교가 그 세력을 배양하고 있었다" 며 당시 좌우익 상황을 설명하고 "이런 영향 등으로 미군정의 최고위직에 임명된 한국인 50명 중 35명이 기독교인이고 또한 군정 고문회의 구성원 11명 중 6명이 기독교인으로 편성되는 등 재한(在韓) 경험의 선교사나 선교사 2세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특히 영어권에서 교육을 받은 인사와 기독교인들이 크게 중용되었다" 고 파악했다.

이는 해방과 동시에 일제 치하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거나 일어를 잘하는 사람이 일제에 의해 중용되고,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말단 공무원도 하지 못했던 것과는 딴판으로 불과 한 달여만에 권력 실세의 지형도가 크게 바뀌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허 교수는 또 이 시기 기독교계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였는가에 대해 5·10총선거를 예로 들며 당초 총선거가 5월 9일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이 날이 주일인 관계로 10일로 하루 연기된 것 또한 북한 김일성도 관계가 있지만 기독교의 영향 때문이라고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또 이승만과 기독교 세력의 연대에 대해서는 "당시 기독교 지도자들은 신생 대한민국 건국은 기독교 정신에 근거한 나라가 되어야 유럽 국가들처럼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며, 정동제일교회를 비롯한 각 지에서의 설교나 강연회, 발표를 통해 이를 강조했다" 고 말했다. 즉 이미 불교나 유교를 통한 국가 성패는 실험을 통해 확인되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었다.

따라서 "양 자의 연결고리는 기독교 정신에 근거한 건국의 비전과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반공이었으며 이승만의 기독교 국가 건설의 비전은 1945년 11월 조선기독교 남부대회 주최, 임시정부요인 환영대회와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회기도 사건" 등에서 이미 나타난바 있다"고 밝혔다.

이어 1952년 선거 때만해도 전국 3500여개 교회가 위원회를 구성해 이승만 대통령을 전폭적으로 지원했으나 1956년이 지나면서부터는 기독교권 내에서 정치와 종교의 분리움직임이 일기 시작하고 이승만과 자유당정권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으며, 이어 1960년 3·15부정선거를 계기로 하야 이후 교회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경향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 날 강연 후에는 자유발언이 이어지기도 했는데 통일운동을 전개한다는 한 참석자는 김구 선생과 관련해 "김구의 항일투쟁은 온 국민이 숭고하게 받아들여야하지만 그러나 이후 행적은 잘못된 것이 많다. 전 정권에서는 효창공원 내에 백범기념관을 만들어놓고 효창운동장까지도 기념관자리로 만들려다 그만뒀다. 지금 효창운동장은 크게 쓰임이 없는데 이곳을 우남 이승만 기념관 자리로 만들도록 노력해 나가야 한다" 고 주장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한편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위원회(회장 강영훈 전 국무총리)는 오는 26일 오후 우남 이승만박사 탄신제133주년을 맞아 평소 이 박사가 다녔던 정동제일교회에서 탄신 추모예배와 이 박사 저서 "한국교회핍박" 출판기념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Konas0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