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은 2014년 4월 4일 현존 사찰 중 가장먼저 창건된 사찰인 강화전등사를 순례하였다.
금번 성지순례는 대불총 년중 계획의 하나로 전반기 성지순례이다
금일 성지순례에는 전등사 이외에도 신미양요의 격전지 초지진과 광성보, 강화 전망대, 고려궁터 등을 둘러보는 기회를 가졌다
강화도는 섬 자체가 우리나라 역사의 축소판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선사 시대의 고인돌 유적부터 단군왕검의 얼이 담긴 마니산,
고려 때의 대몽항쟁과 팔만대장경 조성,
서양 세력과 처음으로 전투를 벌였던 ‘병인양요’에 이르기까지 강화도의 역사는 곧 한민족의 역사나 마찬가지였다. .
강화도에는 전등사를 비롯해 유서 깊은 사찰도 많이 터 잡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호국불교 근본도량인 전등사와 전등사보다 300여 년 후에 세워진 보문사 및 정수사가 있다..
전등사는 현존하는 한국 사찰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으며, 부처님의 가피로 나라를 지킨 호국불교 근본도량으로 역사와 권위를 간직한 사찰이다
전등사는 아도화상에 의하여 서기 381년에 창건되었한다. 이는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지< 서기 372년> 9년 후의 일이다.
전등사는 건립당시에는 진종사이었으나
1282년(충렬왕 8년)에는 왕비인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경전과 옥등을 시주한 것을 계기로 ‘전등사’라 사찰 명칭을 바꾸었다
고려시대에는 몽고와의 전쟁으로 강화에 위치한 전등사가 국가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1232년, 고려 왕실에서는 몽골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강화도로 임시 도읍을 정하고 궁궐을 지은 바 있다. 고려의 강화도 도읍은 1232년부터 1270년까지 이어진다.
“고종 46년(1259년), 임금이 삼랑성 안에 가궐을 짓도록 명했다.”는 사실과 함께 5년 뒤인 원종 5년(1264년), “임금이 대불정오성도량을 열어 4개월 동안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대불정오성도량이라 함은 부처님의 가피로 나라의 온갖 재난을 물리치게 하는, 불교 행사를 일컫는다
고려 때 강화에서 조성된 팔만대장경 역시 부처님의 가피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호국불교 사상의 결정체였다. 고려 조정에서는 대장경을 조성하기 위해 1245년, 선원사를 창건했는데 그 무렵에도 오랜 역사를 가졌던 진종사가 대장경 조성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였을 것이라 추측되고 있다.<전등사: 창건배경과 역사에서>
초진진과 광성보 순방
신미양요의 격전지인 초지진과 광성보를 순방, 미군의 신식 함대와 구식 무기로 대항하여 전술적으로 무참히 패한 전투, 이러한 전쟁이 이 땅에서 발생하지 않기를 기원하며,
강화 전망대 : 강화 북쪽 연백 평야를 한눈에
강화 전망대에서는 좌측은 예성강으로 부터,
우측은 김포반도 끝단에 이르는 북한 지역을 한 눈에 바라 볼수 있다.
연백평야 와 벌거벗은 산들을 볼수 있다.
북한과의 거리는 강폭이 넓은 곳은 2.5 Km~ 좁은 곳은 1.2km로 육상의 DMG 이상으로 긴장감을 트낀다.
백령도와 함께 또하나의 중요한 지역은 아닐까?
강화 고려궁터 : 고종19년(1232)부터 원종11년(1270)까지 39년간 몽골의 난을 피하여 머물렀던 고려궁터가 있다.
지금은 강화 동헌과 외규장각 만이,,
금일의 성지와 전적지 순례를 통하여 대불총 회원들의 "호국호법"정신을 가다듬는 기회가 되었다.
"국가가 있어야 종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