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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소식

국내에서 가장 오래 됐다는 발해 대장경의 정체는?

북방 불교문화의 역사… 고구려→발해→거란→고려 팔만대장경으로

 
 
조선닷컴 <12월 21일>에 게재되였던 내용입니다. 못 보신분들을 위하여 올렸습니다.


북방 불교문화의 역사… 고구려→발해→거란→고려 팔만대장경으로

"사상 처음 발해의 대장경이 출현했다." 일본의 서도(書道) 전문 학술지 "수미(修美)"는 최근 출간된 102호와 103호에 "발해 대장경"에 대한 논문을 게재했다. 논문의 저자는 "서체 대백과사전"을 쓴 이지마 다치오(飯島太千雄)다.

이지마는 논문에서 "이 경전이 발해에 당, 신라, 일본과 비견되는 불교문화가 있었음을 증명한다"고 했다. 5년 전 존재가 알려진 "발해 대장경"이 본격적으로 해외의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아직 교과서와 백과사전에도 등장하지 않는 "발해 대장경"이란 도대체 뭘까? 1000년 전 사라진 수수께끼의 왕국 발해가 대장경을 인쇄할 정도의 수준 높은 문화를 지니고 있었던 것일까?

조병순 성암고서박물관장은 1990년대에 일본에서 입수한 "대방광불 화엄경 권제38 대화령국장(大和寧國藏)"이란 제목의 불경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황마지 위에 먹으로 글자를 쓴 총 길이 8m50㎝의 불경이었다.

서예가인 고(故) 여초 김응현이 이 불경을 본 뒤 이렇게 말했다. "참 달필이구먼….서도의 어느 경지에 도달한 이가 사심 없이 쓴 게 분명해." 하지만 다른 일부가 일본 교토(京都)국립박물관에도 남아있는 이 불경의 출처는 미지수였다.

단서는 "대화령국"이라고 쓰여진 제목뿐이었다. "화령국"은 동양 역사 어디에서도 기록되지 않은 나라였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던 조 관장은 무릎을 쳤다. "화령이라? 가만… 이 지명은 어디서 본 일이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명나라에 "둘 중에서 국호를 골라 달라"고 요청했을 때 "조선"과 함께 후보로 올렸던 국호가 "화령"이었다. 그곳은 이성계의 고향 함흥의 별칭이었다. 역사에서 화령으로 불린 곳은 함흥뿐이었다.

이번에는 이 불경이 어느 시대 것이냐는 문제가 남았다. 조 관장은 대장경에서 "함차번호"라 불리는 일련번호를 분석해 이 불경에 나오는 "육(育)"이라는 번호가 서기 974년 이후에 중국과 고려에서 사용된 적이 없음을 알아냈다.

김경호 한국사경연구회장은 "통일신라시대 후기 경전을 쓸 때 정형화된 서체"라며 그 시기를 "8세기 말에서 9세기"라고 못박았다. "아, 그럼 통일신라시대 후기 것이로구나"라고 결론을 내릴 무렵 다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함흥이 신라 땅이었나?" 아니었다. 신라의 북쪽 경계는 함남 용흥강까지였고 함흥은 그 위였다. 당시 함흥이 속해 있던 나라는 다름 아닌 발해였다. 역사에 기록돼 있지 않은 "화령국"은 발해 남쪽의 정치집단이었던 것이다.


발해의 5경(京) 중에서 "남경 남해부"는 지금까지 함남 북청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조 관장은 북청이 아니라 함흥이라는 단서를 일본 기록에서 잡아냈다.

일본의 정사(正史)인 "속일본기"는 서기 777년 발해 사신 사도몽(史都蒙)이 남해부 토호포(吐{浦)에서 출발했다고 기록했다. 그런데 정사는 약자를 쓰지 않은 게 불문율인데 호(號) 대신 호({)라는 글자가 기록된 것이 의아했다.

"혹시 모양이 비슷한 다른 글자를 잘못 쓴 것이 아닐까?" 중국의 "강희자전"과 일본의 "대한화사전"을 조사해 보니 "령()자는 비슷한 글자가 많아 잘못 표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령"이 맞다면 "토호포"가 아니라 "토령포"였을 것인데, 함흥 남쪽 연안은 고려시대부터 도련포(都連浦)라고 불렸다. "화령국"이란 바로 발해 남경 남해부의 다른 이름이었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지마 다치오도 일본의 역사 기록이 잘못됐다는 조 관장의 논리에 수긍했다. 이 불경이 발해 대장경의 일부가 확실하다면, 최초로 발견된 발해의 서지 유물이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대장경이 된다.

지금까지 발해가 불경을 만들었다는 기록은 861년 일본에 "불정존승다라니기"를 전해 줬다는 내용뿐이었고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대장경은 고려시대인 1006년의 "대보적경 권제32"였다.

"대화령국장"이 11세기에 제작된 거란 대장경의 모본이었음도 밝혀졌다. 조 관장은 "거란 대장경인 "대방광불 화엄경"의 함차번호가 "대화령국장"과 동일한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서기 926년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이 대장경을 만들면서 사실상 발해 것을 그대로 베꼈다는 얘기가 된다. 고려 팔만대장경을 만든 공로자인 수기(守其) 대사는 고려 초조대장경과 북송(北宋) 대장경, 거란 대장경을 모두 참고했다.

결국 "고구려→발해→거란"으로 이어진 북방 불교문화의 계통이 고려의 팔만대장경에 고스란히 계승된 셈이 되는 것이다. 국내 대표적 불경 전문가인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도 여기에 동의했다.

발해 대장경의 발견은 "고구려와 발해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동북공정의 허구성을 밝히는 또 하나의 근거가 된다. 조 관장은 "독자적인 대장경은 중국과 다른 그들만의 천하관(天下觀)이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