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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소식

간다라의 불교를 찾아서(1)

대승불교의 발원지 간다라지역(파키스탄)- 4월 27일부터 5월 3일까지 7일간 기행 후기

 
▲ 간다라 지역 지도 
간다라의 불혼佛魂

송재운 (동국대 명예 교수)




밖으로 알려진 것 보다 평온한 파키스탄

제행무상(諸行無常)이런가. 지금부터 약 2200년전에서 1500년전까지 7백여년동안 불탑과 사원, 그리고 스님과 신도들로 가득했던 간다라(Gandhara)에서 이제는 이런 모든 게 사라지고 유적들만 외롭게 남아있다.

불교는 없고 오로지 있다면 그 때 그 사람들의 불혼(佛魂) 뿐이겠다. 즉 불심(佛心)의 영혼들이다. 그 불심의 영혼들이 아직도 살아 있기에 인구의97%가 이슬람으로 회교 국가인 파키스탄(Pakistan)에서 간다라의 불교문화 유적을 보호하고, 될 수 있으면 그 유산들을 세계불교인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 영혼들은 우리 같은 변방의 불교인들에게도 열심히 손짓을 하고 있다.


요새 우리나라에서 파키스탄을 여행 한다는 것은 불안한 일에 속한다.
미국의 9.11사태 이후 파키스탄은 지금까지 알카에다와 탈레반의 준동으로 치안이 매우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작년 5월 오사마 빈 라덴이 파키스탄의 은신처에서 미군 특공대에 의해 사살된 이후 긴장은 더욱 고조 되었던 것이다. 밖으로 알려진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느 정도 안심하고 파키스탄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카이버 팍툰카와(Khyber Pakhtunkhwa) 정부의 호의 때문이었다.

카이버 팍툰카와주는 파키스탄의 4개 자치주 가운데 하나로서 고대 간다라 왕국의 정치 종교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던 곳으로 지금도 불교문화 유적이 가장 많다. 주의 수도는 페샤와르(Peshawar)인데 일찍이 서역을 찾았던 당(唐)의 구법승 현장(玄奘)은 이 페샤와르를 간다라국(健馱邏國)으로 그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서 소개하고 있다.
카이버 팍툰카와가 바로 고대 간다라국 이었던 것이다. 이런 역사 때문인지 카이버 팍툰카와주에서는 문화관광부가 주관이 되어 간다라 불교문화를 현창하고 있다. 2011년에는 7월 22일부터 7월 31까지 서울 조계사 역사문환관에서 ‘간다라의 불교유산 사진전’을 가진바 있고, 이번에는 모든 안전을 담보하면서 우리 일행을 초청한 것이다.


초청자는 카이버 팍툰카와주 정부의 문화관광부(스포츠 관광 청소년 고고학 박물관 업무 관장) 셰드 아킬 샤(Syed Aqil Shah) 장관이고, 초청대상자는 대불총(大佛總-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 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대불총’ 박희도(전육군 참모총장) 공동대표회장을 단장으로, 이건호 공동회장을 부단장으로 하여 활안(活眼). 법일(法日) 두 스님을 법주로 모시고 모두 19명이 일행이 되어 4월 27일부터 5월 3일까지 7일간 파키스탄 간다라의 불적(佛蹟)들을 답사하였던 것이다.

필자도 그 멤버의 일원. 파키스탄은 막상 가서 보니 밖에서 듣던바와는 다르게 더 없이 평온 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유순하고 자연과 평화를 사랑하며 특히 우리 한국인들의 간다라 문회유적 답사를 크게 환영하고 있었다. 또 우리 일행은 파키스탄 여행중 국빈에 해당하는 경호를 받았고, 모든 숙식을 최고급으로 제공 받았다. 모두 샤 장관의 우정어린 배려와, 우리를 안심시키려는 주도면밀한 경호계획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린다.


간다라-아쇼카 왕, 밀란다 왕, 카니슈카 왕의 무대

간다라는 물론 지명이다. 이번 간다라 순례에 해설자겸 안내자로 현지에서 동참한 박교순 교수에 따르면 ‘간다라’는 “향기로운 땅”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박 교수는 한국의 여류시인데 현재는 파키스탄에 거주하면서 ‘간다라 예술 문화협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고, 간다라 불교문화를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향기로운 땅 간다라”, 아마도 이런 이름이 일찍이 붙여진 것은 이곳이 대승불교를 탄생시키면서 부처님의 법으로 온 국토가 아름답게 꾸며졌고 또 그로하여 불향(佛香)이 그윽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간다라는 파키스탄의 북서부 지역을 말한다. 또 옛날에는 아프가니스탄의 동쪽 일부도 포함 되었다. 그러나 중심은 전술한대로 페샹와르 계곡, 카이버 팍툰카와이다.

파키스탄은 국토의 면적이 한반도의 3배이고 인구는 1억 7천만이 넘는다. 그 중에서 북서부 지역이 옛 간다라였으니 오늘 날 보면 간다라 지역이 얼마나 광대했던지를 알 수가 있다. 이번에 동행하면서 우리들에게 간다라에 대한 많은 지식을 전수 해준 민희식 교수에 따르면 간다라는 BC 5세기경부터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아 왔음으로 이 지방은 일찍부터 서양문화와 가까워 졌다고 한다.

민희식 교수는 1950년대 프랑스 유학시절부터 현재까지 42번이나 간다라 지역을 답사하면서 간다라 문화를 연구하고 있는 이 방면의 권위자이다.

그에 따르면 페르시아를 정복한 알렉산더(Alexanddros the Great, BC 356-323) 대왕이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간다라 지방에 들어 온 이후 (BC 326년)부터 이 지역은 그리스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시킨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간다라에서 불상이 최조로 만들어지고, 대승불교가 흥기한 것은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오늘 날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코 우연이 아니란 점이다.

알렉산더가 물러간 후에는 희랍계 민족이 아닌 인도계의 마우리아 왕조(BC 321-297)가 간다라를 지배 하였다. 마우리아 왕조는 고대 인도의 최초 통일국가를 건설한 왕조이다. 그리고 이 왕조의 제3대왕이 우리가 잘 아는 그 유명한 아소카(Asoka)대왕 이다. 아소카 대왕을 맞아 불교는 이때까지의 군소 종교의 틀을 벗고, 비로소 활기차게 세계종교로 발돋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간다라에 불교가 심어진 것도 아소카 대왕 때라고 한다.

아소카 이후 6세기경 훈족의 침입에 의해 불교가 쇠퇴 할 때까지 간다라는 왕조가 여러번 바뀌었어도 불교는 여전히 성하였다. 마우리아 왕조가 멸망한 후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인 셀레쿠스(Selecus)가 세운 그리스계 민족 박트리아(Bactria) 왕조가 간다라 지방을 다스린다. 이 때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메난도로스(Menandros, 재위 BC155-130)) 왕이다. 『미란다 왕 문경』으로 유명한 그는 희랍인 왕이다. 메난드로스는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사갈라(Sagala. 현 시알코트)에 수도를 정하여 펀잡(Punjub) 지방까지 다스렸다.


메난드로스는 불교로 신앙을 개종하고 불교를 적극 권장 하였다. 『밀란다 왕 문경』은 불교학자인 나가세나(Nagasena)와 주고 받은 대화록이다. 이런 예를 보면 불교는 이미 기원 전에 서양으로 들어 가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메난드로스의 박트리아 이후 간다라는 인도-파르티아인이 지배하는데 이는 사카(Sakas)족으로서 중앙 아시아 유목민이다. 파르티아를 뒤이어 등장하는 것은 쿠샨(Kushan) 왕조. 인도사에서 쿠샨족이라고 기록되고 있는 이 민족은 아프가니스탄 동북부 산악지대에 살고 있던 유목민이라고 하는데 중국 사람들은 월씨(月氏)족이라 불렀다.

쿠샨조의 1대왕은 쿠잘라 카드피세스(Kujala-Kadphises). 그는 AD 40년경 5개의 대월지 소국을 병합하여 쿠샨왕국을 세운다. 그런데 쿠샨 왕조의 최 전성기는 제3대 카니슈카(Kanishka 재위 AD128-151) 왕 때이다. 카니슈카왕은 간다라 지방을 본거지로 중앙아시아에서 중부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리고 처음에는 불교를 경시하다가 나중에 열정적인 신자가 되어 수도 프르샤풀라(현 페샤와르)에 대탑을 세우며 많은 불사를 하고 대승 불교를 일으켰다. 또한 카시미르에서의 제4 불전결집을 주도하였다. 그래서 제2의 아쇼카란 별명이 붙는다. 쿠샨왕조는 AD 1세기 중엽부터 3세기 중엽엽까지 건재 하였다. 그리고 이 시대에 간다라 불교는 전성기를 이루었다. 특히 카니슈카 왕때에 더욱 놀라운 도약이 있었다 .



불상의 출현, 대승불교의 흥기

이 시대 불교의 발전상을 말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불상이 처음 조성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불타(佛陀)는 오직 보리수, 스투파, 법륜, 족적(足跡), 보좌 등 상징적으로만 표현 되었을 뿐이다. 부처님이 인간의 모습, 그것도 매우 자연스럽고 감각적이며 사실적으로 형상화된 모습으로 출현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카니슈카 왕때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간다라 불상은 그리스풍의 자연주의, 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이것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 한국 일본에까지 전파 되었다. 우리나라의 석굴암 대불도 간다라 불상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한다.

둘째 대승불교의 출현이다.
카니슈카 왕때에 아슈바고사(Asvaghosa, 嗎鳴 -카니슈카 왕이 중인도를 정복하고 보상금 대신에 마명을 데려왔다고 함), 파르시바(Parsva-脇尊者)와 같은 대승불학의 대논사들이 있었고, 그 후에는 페샤와르 출신으로 아상가(Asanga-無着, AD310-390년), 바수반두(Vasubandhu-世親), 붓드심파(Buddsimpa-師子覺), 여의(如意)등 고승들이 활동하면서 대승불교를 일으켰다.



간다라 불교가 세계불교사에서 크게 찬란한 부분을 차지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부처님의 모습을 인격화 한 것과 대승불교를 발전 시킨데 있다.

그래서 일찍이 동진(東晋)의 법현(法顯)은 4세기 때에, 남북조 시대의 송운(宋雲)은 6세기 때에, 당(唐)의 현장(玄奘)은 7세기때에, 신라의 혜초(慧超)는 8세기 때에 모두 간다라로 머나먼 구법의 길을 떠났던 것이다.

근. 현대에 와서 파키스탄에서는 아이러니칼 하게도 이들의 기록을 통하여 유적을 발굴하고 연구의 기초를 삼고 있다고 한다. 불법(佛法)의 진리를 구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 천 수백년을 훨씬 넘긴 오늘에 와서 빛을 보는 것이다. (2012. 6. 30)

-태고종 "한국불교"신문 게재되었던 내용입니다-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