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5.18부상자회장 신경진과 5.18형제자매가족회 회장 정수만 등이 필자와 5.18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인터넷에 피력한 38명을 대상으로 소나기식 고소-고발을 했다. 필자에 대해서는 어이없게도 수원지방검찰청 안양지청 박윤희 검사가 기소를 했고, 2009년 10월 8일 안양지원 405호실에서 첫 심리가 열렸다. 다음 재판은 11월12일, 오후 4시로 잡혀 있다. 이날은 고소자 대표인 신경진이 증인으로 출석하게 되어 있고, 5.18측에서도 많은 인원이 참관하리라는 생각이 든다.기소내용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모든 기록들을 보면서 필자는 5.18은 김대중 등이 일으킨 내란사건이라는 1980년 판결에 동의하며, 북한의 특수군이 파견되어 조직적인 작전지휘를 했을 것이라는 심증을 다시 한 번 갖게 되었다. 불순분자들이 시민들을 총으로 쏘는 것은 물론 제주 4.3사건에서처럼 잔인한 방법으로 살인을 저질러 놓고, 좌익들이 이를 군인들에게 뒤집어씌우는 소위 모략전을 반복적으로 구사함으로써 민주화 운동으로 굳혀가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심리적 내전’이 바로 5.18이라고 생각한다.”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총4권
오늘(10월9일) 아침 7:30분, 의정부에 사는 해병출신 고엽제 환자 최영식이 제게 전화를 주었습니다. “박사님, 저는 청와대로 갑니다. 암은 고칠 수 있어도 제가 앓고 있는 고엽제 병은 고칠 수 없다 합니다. 하루하루 겪는 고통이 너무 괴로워 술이 아니면 견디지를 못합니다. 좌익 정권이 끝나면 우익 정부로부터 따듯한 배려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 섰어도 여전히 우리의 요구에 귀를 막고 있습니다. 이명박 앞에 가서 신나를 뿌리고 죽을 것입니다. 저 한 사람 죽으면 고엽제 전우들에게 귀를 기울여 주지 않을까 해서 이 한 몸 산화합니다. 박사님은 대한민국을 위해 열심히 투쟁하십시오. . 지금 청와대 정문이 보입니다. 택시에서 내립니다.” 그리고 전화가 끊겼습니다. 저는 곧바로 112에 서둘러 달라 신고를 했습니다. 그 사이에 최영식 전우는 청와대 정문 앞에서 신나를 이미 뿌렸고 불을 당기려 했습니다. 천우신조로 그 순간 경찰이 뒤에서 덮쳐 제압되었습니다. 청와대 가까이 있는 청운 파출소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제압되었다고! 신나를 뿌렸다고 하니 갈아입을 옷을 챙겨가면서 고엽제 중앙회에 전화를 걸어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지
.18광주에 북한군이 왔는가?(북한 정보편)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8(첨부26)을 읽고도 읽고도 광주에는 절대로 북한 특수군이 오지 않았다고 생각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1) 첨부 26의 33쪽에는 2회에 걸친 설문조사에 총 참여인원 115명. 그중 32명이 답변을 거부 하였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5.18 광주에 북한특수군이 개입하였다는 말을 5.18광주에 왔다 간 사람으로부터 직접 들었다는 사람이 13명, 친척이나 친구로부터 들었다는 사람이 61명이라고 표시돼 있습니다. 전체 115명중 답변을 거부한 32명을 빼면 83명입니다. 이 83명중 74명, 즉 설문조사에 응했던 사람들의 89.1%가 북한 특수부대가 5.18광주에 왔었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는 통계가 제시돼 있습니다. 2) 첨부 26의 53쪽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전직 북한 여교사 수기 중에서) “본인이 이 글을 쓰기 전에 한국에 탈북 하여 온 40대 이상 남녀 23명에게 북한에 있을 때 1980년 5.18광주사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냐고 일일이 물어보았더니 23명 중 농촌에 있던 여성한명을 제외한 22명이 북한군이 남한에 투입되었다는 사실을 북한에 있을
황장엽씨는 남북 분단 후 북에서 남으로 귀순한 북쪽 인물 중 최고위급 인사였다. 그래서 그의 망명은 당시 남한 사회는 물론 전세계를 떠들썩 하게 만들었다. 그는 김일성 주체 사상의 토대를 제공하고 김일성 개인 비서와 당 비서를 지내고 인민회의 의장을 세 차례나 역임한 북한 핵심 권력중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중요 인물이 망명한 사실이 가지는 상징성도 대단한 것이었지만, 그보다는 그가 가진 정보의 중요성, 그가 가진 정보가 노출될 때 발생할 파급력이 대단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그는 북한 권력의 최상층부에 위치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가 가진 정보는 북괴에 치명타를 안길 수 있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 파괴력이 실제로 그런 정도일지 아닐지는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기대를 가졌다. 우리는 그가 북괴를 와해시키고 북괴를 코너로 압박할 정보를 제공해 주기를 기대했다. 적어도 그는 남한 내 간첩 조직에 대한 확실한 증언을 해 줄 수 있을 것으로기대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망명은 남한내 간첩 조직을 일망 타진하는 데 일대 공헌을 하고 국가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일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그러나, 그는 내가 기억하기로는 남쪽에 2 만명 가까
2009년 9월 14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는 국회의원 권영세, 나경원, 남경필, 정두언, 정태근이 공동 주최하는 정책토론회가 있었다. 권영세의 인사말에 강원택 교수(숭실대 정치학과)와 장정수(한국미래사회연구원 원장, 전 한겨레신문 편집인)의 기조발제가 있었다 한다. 발제문들에서 보이는 핵심적 표현들은 아래와 같다. 1)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이고 이념지향적인 좌우이념논쟁은 국민의 관심을 끌기 어렵기 때문에 중도개혁이 필요하다.(강원택) 2) 이념논쟁은 이분법적 갈등이다. (강원택)3) 중도 개혁의 정치가 이념적 갈등을 피하고 사회를 통합하려면 중산층을 핵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강원택) 4) 좌도 우를 수용하고 우도 좌를 수용해야 한다.(장정수) 5) 보수는 시장과 감세 등을 중시하고, 진보는 사회안전망, 복지, 예산확대, 환경을 중시한다.(남경필) 한국사회에서의 좌우이념논쟁은 사회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정치는 좌와 우를 동시에 아우르고 이념논쟁을 회피하면서 중산층을 잘 살게 할 수 있는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얼른 보면 여기에 큰 문제가 없어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발제자들은
연방제통일방안은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공산주의 정권과, 인권을 존중한다는 민주주의 정권이 한 지붕 아래서 한반도 기를 내걸고 함께 살자는 것을 뜻한다. 말로는 한 민족이라고 하지만 북한은 지난 60여 년간 문명과는 거리가 먼 밀림 속에서 예의범절도 모르고 창피한 것이 무엇인줄도 모르고 생존해온 동물적 집단이고, 우리는 문명권 속에서 예의범절을 알면서 음악등 수많은 예술을 즐기면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 두 집단이 한 지붕 아래에서 살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도 연방제 통일을 하자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좌익들이다. 좌익들의 마음속에는 적화통일이 있다. 그런데도 이들은 적화통일을 하자고 말하지 않고 연방제통일을 하자고 한다. 적화통일 하자고 하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겁을 먹고 경계한다. 그래서 그럴 듯하고 애매모호한 연방제 통일을 하자고 하는 것이다. 연방제 통일이 된다면 무슨 현상이 가장 먼저 발생할까? 주한미군 철수다. 한반도가 통일 됐으니 이제 미국은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미군이 나가지 않을 수 없다. 미군이 나가면 곧바로 월남식 적화통일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김대중의 6.1
탈북한 북한군 출신들이‘자유북한군인연합’을 결성하여 2차에 걸친 기자회견과 한국논단 및 인터넷신문들을 통해 5.18 광주에 북한군이 대량으로 내려왔다는 증언을 했습니다. 이에 더해 이 단체는 최근 많은 탈북자들로부터 5.18에 대해 각자가 알고 있는 내용들을 수기형식으로 받아 400 여 쪽의 증언집을 냈고 이 증언집은 “-5.18광주사태의 진실을 공개하는 탈북자들의 생생한 증언록-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라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16명의 수기 내용을 요약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이들 모두에 공통적인 것은 북한에서 연일 TV를 통해 공수부대가 여인의 태아를 꺼내는 사진, 여인의 젖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사진 등 남한에서는 유언비어로만 듣던 사진과 동영상들을 반복해서 방영했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는 점, 광주에서 시시각각으로 발생하는 상황들을 간첩을 통해 방송했다는 점을 포함하여 5.18공화국영웅 당사자나 혹은 당사자를 잘 아는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소상하고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책을 읽고서도 5.18광주에 북한 특수부대가 절대 오지 않았다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으로 봅니다. 16명의 수기 모두가 소설 같고 감동적인
7월시국의 요약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노무현은 스스로 목숨을 끓었고, 김대중은 병원에서 최후를 맞이할 것이라는 시각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김정일마저 비틀거려 머지않아 사라질 모양입니다. 남한 빨치산들 가운데 아직은 노무현과 김대중만큼의 상징성을 형성한 인물이 없고, 북한에서도 김정일 2세가 탄생될 기미가 없어 보입니다. 국가의 운명을 파괴해온 3인의 악동들이 후계자를 남겨놓지 못한 채 동시에 사라지게 될 전망입니다. 우선은 남한빨치산들의 정신적 구심점들이었던 3명의 두목들이 거의 동시에 사라짐으로써 남한 빨치산들의 기세가 단비에 굶주린 풀잎처럼 시들거릴 것입니다. 남한 빨치산들이 그렇게도 신봉하던 ‘강성대국’은 미국이 빼든 칼날 앞에 초라하게 주저앉았습니다. 무기를 싣고 미얀마로 가려던 강남1호가 미국의 추적을 받고, 사이좋게 지내던 미얀마까지도 강남호의 입항을 거부함에 따라 국제적 왕따 신세가 되어 항해 20일 만에 남포항으로 회항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북한의 앞마당이었던 비동맹 회의에서도 왕따를 당했습니다. 북한과 거래하는 국제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제재를 당하기 때문에 온 세계가 북한과의 거래를 외면하면서 UN제재위가 지정한 북한의
시체를 가지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행동을 놓고 우리는 ‘시체놀음’이라 부른다. 용산 농성에서 스스로 신나를 쌓아놓고 스스로 불을 지른 사람들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이 이른바 용산시체 5구다. 이들 시체들은 6개월 동안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정치목적에 이용돼 오다가 드디어 시청 앞으로 끌려 나갈 모양이다. 병원에 밀린 돈도 4억 원 규모인데다 사람들의 관심을 얻지 못하자 최후의 행동을 보여줄 모양이다. 용산범대위는 이들 시신들을 오늘 7.20일 오후 3시 순천향병원에서 위령제와 천구(遷柩.시체를 담은 관을 밖으로 옮김) 의식에 이어 관을 참사 발생지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빌딩으로 옮겨 오후 7시 천주교 시국 미사와 8시 범국민추모대회를 하고 나서 서울광장으로 다시 옮길 계획이라 한다. 하지만 경찰은 병원에서부터 천구를 봉쇄할 방침이고, 순천향병원도 밀린 장례식장 및 안치실 사용료 4억 원을 내기 전에 시신을 내줄 수 없다고 맞서 범대위와 경찰ㆍ병원 간의 물리적 충돌이 예상된다고 한다. 이들은 서울광장에서 국민 분향소를 설치하고, 정부와 협상 상황을 봐서 금주 중에 유족들이 시신을 메고 청와대 앞에서 농성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이들은 대통령의
오늘(2009.7.13) 조선닷컴 맨 위에는 최보식이 만난 사람 이재오의 인터뷰 기사가 크게 떠 있고, 100자평도 오전 11시 시각으로 130여개가 달렸다. 종이신문에는 1개면 전체가 이재오의 발언과 이재오의 사진들에 할애됐다. 인터뷰에는 박근혜에 쌓인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고 박정희에 대한 불만이 드러나 있다. 그 중에는 아래와 같은 말이 있다. 당시 과거사 문제로 온 사회가 시끄럽던 시점이었다. 연찬회에서 여의도 연구소가 친일은 시대적 불가피성이 있고, 5·16 쿠데타는 반헌법적 발상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이 그랬다는 식으로 발제했다. 내가 흥분해 연단에 섰다. 친일행위가 불가피했다면 목숨 바쳐 독립운동을 한 분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5·16은 명백히 헌정을 유린한 쿠데타다. 그건 그것대로 인정하고 그 뒤 치적을 인정해야지 쿠데타를 합법화하면 안 된다고 했다.이재오는 끈질긴 국보법 위반행위로 감옥에서 10년 이상 살았다고 한다. 최대의 간첩사건인 남민전사건, 민통련사건, 전민련사건, 민중당사건 등에 모두 핵심인물로 간여한 골수 좌익이다. 그가 활동했던 것만큼 그가 당했던 고통고 컸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가슴에는 박정희에 대한 증오가 가득할 법
현행 비정규직법은 어떤 내용인가? 비정규직법은 ▲기간제(계약직)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법 ▲파견근로자 보호법 ▲노동위원회법 등 비정규직 보호와 관련한 3개 법안을 묶어서 통칭하며, 2006년 11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2007년 7월 1일부터 시행됐다. 현행 비정규직법 중 논란이 되는 것은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법이다. 기간제법은 사용자가 기간제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할 경우 무기계약(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법 시행 2주년이 되는 올해 7월 1일부터 사용기간 2년을 채우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쏟아져 나오게 된다. 정부와 여당은 내일 당장 쏟아져 나올 실업자를 70만-100만으로 잡고 있는 반면 민주당은 30만명 정도로 잡고 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은 비정규직의 `2년 사용기간 적용을 3년 유예하는 내용의 기간제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예를 들어 2007년 7월 1일 고용계약을 체결한 비정규직이 있다면 `2년 사용기간 적용을 3년 후인 2010년 7월 1일부터 적용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용자는 2007년 7월 1일에 고용한 비정규직이 있더라도 2010년까지는 2년 사용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http://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korean+war&search_type=&aq=fhttp://www.youtube.com/watch?v=sLLUR1vviak 6.25 전쟁의 아침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18만명의 인민군은 609문의 야포와 1,000여문의 박격포를 쏟아부으면서 272대의 탱크를 몰고 파죽지세로 남침을 감행했다. 전선은 겉잡을 수 없이 밀리고 있는데도 국군은 연일 대승을 거두고 있다는 방송만 했다. 의정부가 유린됐을 27일 06시에야 비로소 한때나마 국군이 밀리고 있다는 방송을 했다. 놀란 150만 서울 시민들이 급히 짐을 꾸려 한강교로 몰렸다. 그때 국군은 의정부를 다시 탈환했다며 또다시 승전보를 방송했다. 피난길을 떠나던 일부 시민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일부 시민들은 한강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6.28일 새벽 2시15분, 어이 없게도 한강교가 갑자기 폭파돼 버렸다. 다리를 메운 피난민과 국군들이 목숨을 잃었다. 포격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닥아오자 집으로 돌아갔던 시민들이 한강으로 밀려와 아수라장을 이뤘다. 6.28일 오전 11시 30분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고 이때까지 서울을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북핵에 대한 인식이 한미간에 동일하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좋은 분위기로 이루어졌다. 북한에게 결코 핵국가클럽의 의자를 내 줄 수 없다는 것, 미국의 억지력을 한국에도 동일하게 제공하겠다는 것, 통일은 자유민주체제로 해야 한다는 것, 북한의 인권이 개선돼야 한다는 것 등을 담은 모양이다. 화해에서 대결로 가는 것이다. 북한을 핵국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강력하지만 북한은 이미 다량의 핵무기 생산체제를 갖추기 위해 박차를 가할 것이며 이러한 목표는 머지않은 장래에 실현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이 핵무기 대량생산 체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은 북한의 핵개발이 그동안 안이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주장한 것처럼 더 이상 협상의 지렛대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미-일을 공격하고 테러 국가들을 상대로 수출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6자회담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며 그동안 줄기차게 북한에 속아왔던 전력을 보더라도 북한과 핵협상을 한다는 것은 바보짓이다. 이제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북한은 줄곧 우라늄농축 프로그램 자체를 부정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우라늄 농축 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김정일 후계자인 3남 김정운의 측근들이 최근 장남 김정남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다. KBS는 6월 15일 중국 측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일의 후계자로 떠오른 김정운의 측근들이 김정일 모르게 김정남 주변 인사들을 제거한 뒤 마카오에 체류 중인 김정남까지 암살하려 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계획이 지난주초 중국 측에 알려지면서 급제동이 걸렸다고 한다. 중국 당국은 북한측에 암살 계획을 중지하라고 경고하는 한편, 안전부와 군의 정보 요원들을 마카오로 급파해 김정남을 다른 지역으로 피신시켰다고 한다.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은 핵실험과 암살 계획 등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식량과 석유 지원까지 끊겠다는 메시지도 전달했다고 한다. 중국이 김정남 보호에 적극 나선 이유는 김정남이 중국내 고위급 인사들과 오랜 기간 친분을 쌓아두었기 때문이라면서 김정남은 당분간 은신처에 머물면서 중국 망명 여부를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중국은 땡잡은 것 같다. 중국은 김정남을 위험시 하는 북한의 일부 세력보다 훨씬 더 강하다. 중국이 김정일을 보호하는 목적은 단지 김정남을 보호하기 위한 것을 훨씬 넘어 북한에 대해 강력한 카드를 마련하기 위
김문수가 설명해주는 시국선언 교수의 정체그는 “시국선언에 나선 교수들의 얼굴을 보니 내가 운동할 때 같이 했던 사람들이다. 그분들의 머릿속에 든 생각을 난 다 안다고 했다. 그들이 지금 설치는 것은 현 정세가 매우 불안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저들은 리더십 공백을 맹렬한 활동을 전개할 성숙된 시기라고 보기 때문이라며 저들의 속성을 잘 설명해 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지금 대학들에서 시국선언을 하는 교수들이라는 것은 바로 좌익 운동권이라는 증언을 해준 것이다. 김대중을 보는 김문수의 이중 시각 김대중까지 나서서 독재자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하지 말자. 이 땅에 독재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한 지금의 현상에 대해 김문수는 이렇게 진단했다.그분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평생 그런 식으로 세상을 살아왔다. 고속도로 반대 수출입국 반대 다 반대해왔다. 그런데 북한에 대해 반대한 적은 없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분이 북한의 핵에 대해 침묵한다. 진정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를 신봉한다면 고통 받는 북한 주민들의 신음에 대해 무슨 말씀을 했는지 듣고 싶다. 한쪽엔 과도한 비판을 하고 다른 쪽엔 침묵한다.며칠 전, 세계가 나서서 북한을 공격하자 그는 “북한에 대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