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독재집단이 고의적으로 미국의 두 여기자(유나 리, 로라 링)를 인질로 잡아뒀다가,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의도적으로 풀어주면서 국제사회를 향해 참으로 유치하고 몽상한 속임수를 부린다. 자신의 평화와 인권 애호가로 김정일은 인상지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김정일이 클린턴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미국 여기자 2명에 대해 특사를 실시해 석방토록 지시했다고 북한의 어용방송들이 떠들어댐으로써, 국제사회에 평화와 대화의 꼼수를 부렸다. 인질범이 인질을 풀어주면서 마치 대단한 자비라도 베푸는 듯하는 김정일의 꼼수는 국제사회에서 통하지 않을 넌센스다. 북한의 김정일 집단은 지금 치매환자의 짓을 국제사회에 하고, 남한의 좌익세력은 그 북한의 김정일을 닮아 미쳐가고 있다. 연합뉴스는 5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미국 기자 여기자 2명이 우리나라에 불법 입국해 반공화국 적대행위를 한 데 대해 심심한 사과의 뜻을 표하고, 그들을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관대하게 용서해 돌려보내 줄 데 대한 미국 정부의 간절한 요청을 정중히 전달했다. 깊은 사의를 표시하며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개선 방도와 관련한 견해를 담은 버락 오바마 미 합중국 대통령의 구두메시지를 정중히 전달했다는 북한
다원주의적 정의(pluralistic justice)를 주창한 미국의 마이클 왈쩌는 부정의(injustice)를 독점(monopoly)과 지배(dominance)로 정의했다. 독점과 지배는, 특정 지배자나 독점자의 권익만 보호하고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과 권익을 배척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회적 차등과 정치적 억압의 근원이 된다고 왈쩌는 주장했다. 일률적 평등(simple equality)은 곧 독재(tyranny)라고 그는 규정한다. 이는 공산주의가 추구했던 절대적 평등(absolute equality)에 대한 자유민주주의자의 이론적 반격으로 평가된다. 다양한 취향과 능력을 다양한 사회적 영역들에서 자유롭게 발휘하고 성취하게 도와주는 것이 가장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왈쩌는 주장했다. 이 불완전한 세상에서 완전한 정의, 완전한 민주, 완전한 평등보다 인류에게 해로운 악덕이 없다는 역설을 다원주의적 정의론자인 왈쩌는 다 간파했다. 오직 정치권력에 의해서만 모든 사회적 영역들에서 평등과 정의가 결정(배분)되는 폐악을 복합적 평등(complex equality)이론 혹은 다원주의적 정의론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월쩌는 믿었다. 북한과 같은 절대평등의 사회
14일 대구에서 대불총 주최 현대사 재조명 세미나가 있었다. 광주사태를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한 김영삼 정권 당시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의 모순을 발표자와 토론자들이 지적하자, 800여명의 대구시민들이 환호로써 동조했다. 이제 김대중-김영삼에 의해 우상화된 민주화운동의 폐해를 국민들이 교정할 때가 된 것 같다. 군사정권의 억압통치가 민주화세력에 의해 교정되었듯이, 이제 타락한 각성된 국민들이 민주화세력의 폐악을 교정할 시기가 되었다. 민주화가 만병통치약이었던 시대는 이제 끝났고, 타락한 민주투사들은 국민적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 김대중 추종 깽판세력 때문에 억압적 통치자와 방자한 군중들은 동시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광우난동사태를 비롯하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좌익세력의 깽판들은 광주사태를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한 언론계, 법조계, 정치권, 학계가 쌓은 악업이 정치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의견도 이날 대불총 대구 세미나에서 나왔다. 1980년대에 김대중 세력의 선명한 군중반란극으로 평가되었던 광주사태가 1997년부터 김영삼-김대중 세력에 의해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되면서, 오늘날 한국사회에는 좌익세력의 깽판극이 자연스럽게 민주화운동으로 판정되
미디어법, 국정원법, 비정규직법 등 민생·공안·방송 관련 법안들을 한나라당은 단독국회를 열어서라도 이제는 통과시켜야 한다. 국회를 깽판장으로 만들고 광장을 중우정치의 난장판으로 만든 좌익세력의 방해작전을 넘어, 국가의 언론기관, 공안기관, 생산현장, 그리고 서민생활을 정상화시킬 미디어법, 국정원법, 그리고 비정규직법의 재개정은 빨리 국회에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단행되어야 한다. 좌익세력에 포로된 야당들에 의해 1년이나 시간을 낭비한 이명박 정부의 국회에서 다수결 원칙은 가장 합리적인 민의수렴 방법이다. 국민들도 이제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등의 반정부 딴지에 지쳤다. 프리존의 한 네티즌(총몽)은 다음과 같이 절규하듯이 야당의 깽판에 분노하고 범우익세력이 단결하여 미디어법을 통과시키라고 주장했다: 자유선진당, 한나라당 범우파 단결하여 미디어법 통과시켜야 합니다. 이미 민주당은 미디어위원회를 파행키겨 약속을 걸레로 만드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습니다.이미 민주당은 신뢰와 명분을 잃었습니다. 한 국가의 정당이 양아치 조폭들처럼 행동했습니다. 이회창 대표는 우파임을 자부한다면 거리낌 없이 단독국회를 지원하고 미디어법을 적극 지원해야 합니다. 또한 한나라당은
지난 3개월 간 대한민국을, 국내적으로는 혼란으로 몰아가고, 국제적으로는 신인도를 추락시키게 만든 광우병 촛불집회는 민주화와 남북통일의 화려한 가면을 쓴 좌익세력의 독재성, 기만성, 이중성, 억지성, 반역성을 폭로한 상징이 되었다. 입만 열만 민주와 평화와 통일을 들먹이던 민주투사 김대중의 위선과 기만이 이번에 광우난동사태를 직접민주주의라고 찬양함으로써 다 폭로되었다. 불법적 폭력과 비이성석 독선의 상징으로 기록될 광우병 광란극을 보면서 촛불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민주투사 김근태가 어떤 종류의 민주화 운동을 했는지로 국민들은 이번에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평화통일의 사도 김대중과 민주투사 김근태가 말하는 민주는 독재고, 평화는 분쟁이고, 통일은 분열임이 드러났다. 광우난동의 촛불은 민주화세력의 위선과 독선을 깨밝힌 계시의 촛불이다. 광우병을 핑계로 연출된 광란의 촛불집회는 사이비 평화-민주-통일세력의 폭력적, 독재적, 분열적 실체를 노출시킨 계시적 사건이었다. 광우병 촛불집회를 연출한 좌익선동세력은 오직 親北反美反韓의 정치적 이념을 악랄하게 한국사회에 구현할 뿐이지, 진정한 국민의 생명이나 건강에 관심이 없는 위선적 반역집단이다. 이 광우난동세력은 진짜
오랜 수모 끝에 보수선언한 李대통령? 李대통령 “폭력·국가정체성 도전 시위 엄격대처” 좌익세력의 정권타도와 체제전복의 도전에 시달린 이명박 대통령은 이제 反대한민국세력에 정면승부를 선언하고, 좌익세력의 반란적 군중선동에 대해 진압에 나서는가?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6월 24일 국무회의에서 촛불시위의 과격화에 대해 촛불 시위 과정에서 경찰도 많은 고생을 했지만 인명 사고가 없었던 것은 큰 다행이다. 일부 정책에 비판하는 시위는 정부정책을 돌아보고 보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만,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 폭력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의 이러한 단호한 주장에 한 보수진영의 여성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명박 대통령의 단호한 모습을 마침내 보게 되는 것이 아니냐며 반겼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 같은 주장은 앞으로 불법적 폭력시위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란적 군중선동에 대해서는 공권력을 동원하여 엄중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의 이러한 강경대응 주장은 광우병의 위험성을 핑계로 정권타도와 체제전복에 나선 좌익선동세력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한 이명박 정부의 무능과 불의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육열로 최고수준의 판단력을 가지게 된 한국의 국민들은 지금 최고수준의 민주주의를 연출하고 있다. 해방 후 한국의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수준만큼 꾸준하게 성장했지만, 특히 1987년 6.29선언 이후에 한국의 국민들은 정치권을 완전히 장악하여 국민의 의지에 따라서 좌지우지 하고 있다. 비록 가끔은 이전 시기의 억압이나 모순을 갑자기 극복하기 위한 광신적인 히스테리로 자신들의 의지를 표출하기도 하지만, 국민들의 총의가 정확하게 정치권에 반영되는 민주주의가 작동되는 것은 틀림이 없다. 국민들은 냉정한 심리상태에서 정치권을 냉엄하게 심판하거나 혹은 흥분된 심리상태에서 정치권의 모순에 광신적으로 반발하기도 한다.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 국민의 의지는 정치권에 내리는 하늘의 뜻다. 국민들의 의지가 냉엄한 심판이 아니라 광신적 히스테리로 표출된 적이 몇번 있다. 이 광신적 히스테리(fanatic hysteria)를 과잉민주주의(over-democracy)라고 명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17대 대선과 총선에서 좌경화된 방송의 광신적 선전선동에 미혹되어 국민들도 광신적 히스테리 현상을 연출했다. 하늘이 가끔 질풍노도를 보이듯이, 사람도 가끔 히스테리를
한국사회에서 가장 정신이 망가진 세대는 386건달세대이다. 이들은 소위 사회과학세대로서 대학시절에 좌익이념서적을 탐독한 세대이다. 베이컨이 이미 주장한 것처럼, 인간의 두뇌는 근원적으로 백지나 空CD와 같다. 마치 컴퓨터의 하드 드라이브와 마찬가지로 한번 이념이나 가치가 입력이 되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특히 대학시절(학부)에 한번 물든 세계관, 가치, 이념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젊은 대학생들의 학부시절에 이념적 정향(orientation)이 설정되는 것은, 컴퓨터로 비유하자면, 하드웨어에 기본적 프로그램이 깔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미국에서 대학의 학부를 중시하는 것은 어느 대학에서 학부시절을 보냈는가에 따라서 한 인간의 기본적 가치관이나 정향이나 품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의 학부시절에 깊이 특정 이념에 빠져들었던 자는 그 이념의 바이러스로부터 벗어나기 쉽지 않다. 민주화를 위한 순수한 열정을 가진 386세대가 없지 않다. 하지만 6.29선언 이후에 이미 민주화 데모가 필요없던 시절에 폭력시위를 해댄 비굴한 386세대의 머리 속에 심어진 방자한 건달의식 혹은 反韓親北的 가치관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6.29전에는 민주화라는 명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