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의 지배적인 여론에서는 국회무용론(國會無用論)이 설왕설래(說往說來)한 지 오래이다. 오죽 여야가 민생정치에 무능하고 “부정뇌물을 먹는데는 악어가 먹이 삼키듯 한다” 고 비유하고 냉소하겠는가. 항설(巷說)은 작금의 국회에 대하여 이렇게 개탄한다. 첫째, 차떼기 검은 돈 먹고 감옥살이를 한 전과자들이 여전히 국회의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을 개탄한다. 둘째, 촛불시위가 무슨 혁명군 같이 적폐청산을 외치면 무조건 국회는 복종하듯 유구무언(有口無言)의 정치를 하는 것을 개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항간에는 한국의 정치 지망생은 애써 국회의원 선거를 할 필요없이 대가리수 많은 촛불시위를 동원하여 요구의 구호를 외쳐대면, 정부나 국회는 존명봉대(尊命奉戴)식으로 실천하는 것이 작금에 대한민국 정치판이라는 지배적인 여론이다. 또 文대통령과 촛불시위 주도자들은 “짜고 치는 고스톱 판 같이 동패노릇을 노골적으로 해보인다”는 항설의 주장도 난무한다. 文대통령의 적폐청산에 촛불시위대는 북장구를 치듯 성원하듯 구호하는 것이 가관이다. 촛불집회를 서점가나 항간에는 ‘촛불혁명’이라고 부르고, 러시아 10월 혁명, 중공 혁명의 반열에 논평하는 논객과, 촛불시위를 “촛불혁명”이라고 주
대한민국에 동맹국에 대한 신의가 있는 국민들이 산다면, 美, 트럼프 대통령 내외의 방한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면서 대환영해야 옳을 것이다. 한-미는 과거 6,25 전쟁 때 침략자 국제 공산주의자들을 내쫓기 위해 함께 피를 뿌리며 싸운 혈맹이다. 미국은 혈맹에 변치 않았지만, 한국 일부 국민들은 무섭게 변질되어 버렸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환영하는 일부 국민들은 한켠으로 깊이 우려하고 있다. “달라스의 케네디 대통령같은 흉변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동 집필하고 유포한 공산당 선언의 서두에 등장하는 ‘유령’이 대한민국에 떠돌아 전성시대를 열어가듯 보인다. 유령의 근거는, 민주주의라면 무조건 좋아하고 선거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몰표를 던지는 일부 국민들을 이용하는 공산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오래전에 전략을 바꿨다. 그 전략에 기만당해 일부 국민들은 사회주의자들에 총선과 대선에 승리하게 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한 선거를 했다고 자축하는 것이다. 미군은 처음 대한민국에 왔을 때는 미 24군단장 하지 중장이 일본군을 쫓아내고 대신하는 또하나의 점령군으로 진주해왔었다. 주장의 근거는 하지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세월호 참사를 이용한 촛불집회의 선전선동으로 19대 대선에서 승리한 文대통령의 적폐청산의 정치에 대하여 일부국민들은 과거 정권에 대한 보복정치라는 말이 항간에 나돈지 오래이다. 촛불집회의 핵심은 서민, 즉 민중들이다. 민중이 희망하는 정치는 없고, 미운 털 박힌 과거 정권에 대한 복수전만 하려는 文정부에 대해서 일부 민중들은 서서히 실망을 넘어 분노로 변해가고 있다. “민중에 기대에 부응 못하는 文정부를 타도하자!”는 분노의 함성이 벌써 시작되어서야 되겠는가! 文정부가 시작되면서 文정부를 움직이는 문대통령의 측근에 포진한 일부 고위 감투들이 진보 좌파라는 설이 파다하다. 동패들이 모였다는 것이다. 일부 골수 사회주의자들이라는 항설도 있다. 70년만에 문닫은 “러시아 맑스, 레닌파(派)인 사회주의자들이 한국에서 부활하여 시험정치를 하고 있다”는 항설이 파다하다. 러시아 인민들은 오래전에 레닌 동상의 목에 교수형을 의미하는 밧줄을 걸어 쓰러뜨렸고, 노동자, 농민들은 “망치로 레닌의 쓰러진 동상을 산산히 부숴버렀다.”맑스, 레닌주의가 틀렸다는 표상이다. 文정부는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하는 것 아닌가. 러시아의 10월 혁명을 일으키어 성
文대통령은 재벌들이 아닌 촛불민중과 전국에 민중이 신명나게 살만한 세상으로 변혁 시켜달라는 간절한 소망으로 19대 대통령으로 선택해주었다. 文대통령은 정권 초기에 제백사(除百事)하고, 우선적으로 민중들의 민생을 위해 민중을 속박하고 억압하는 악법폐지에 총력해야 했다. 그런데 文정부는 과거에 대한 한풀이같은 적폐청산에만 총력해보인다. 그것은 대통령으로 선택해준 민중을 정면 배신하는 행위이다. 대다수 국민은 민생없는 적폐청산에 나날히 분노가 가중되고 있다. 연속 혁명같은 민중봉기는 다시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과거 대한민국에 붉은 완장의 시절이 있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악을 쓰며 붉은 완장을 차고 죽창을 든 자들이 인민위원회를 열어 단죄하던 모습이 적폐청산에 “오버 랩” 된다. 민중이 그토록 바라는 정치가 그러한 정치였을까? 작금에 TV 등에서 한국 검찰의 수장은 강력하게 추진되는 적폐청산은 자신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 국민에 과시하고, 수사를 가급적 오래끌지 않겠고,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단호한 조치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식의 강변의 인터뷰를 하였다. 그것은 지켜보는 민중들은 기립박수의 지지를 표할까? 또 하나의 권부의 충견 세퍼드를 연상하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법부의 검찰과 법원의 재판에 대하여 이제야 정면으로 자신이 정치보복을 당하고 있다는 저항의 반론을 발표하며, 자신의 변호사들을 사임하게 하였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각오라고 하겠다.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때부터 사법부는 제왕적 대통령의 상명하복(上命下服) 속성을 환히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박 전 대통령이 작금의 재판부에서 무죄의 선처를 바라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것(緣木求魚)과 같을 뿐이다. 한국의 사법부는 과거나 현재나 제왕적 권력의 대통령의 눈치를 보고 보비위하는 재판을 해온 것같다는 항간의 지배적인 의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치보복에 결사항전하는 각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주장의 근거로 박정희 전 대통령 때는 판결을 하려는 직전의 판사에게 청와대든 정보부든 권부에서 형량을 요구하는 부전지(附箋紙)가 주어지면, 입으로는 사법정의를 고집하는 판사도 지위보전과 호구지책(糊口之策)을 위해서 만부득히 “이미 작성한 판결문을 휴지통에 버리고 요구에 부응하는 판결문을 다시 써 판결해야 했다”고 회고록으로 고백하는 판사는 있었다. 예컨대 이승만 전 대통령 때, 조봉암 정치인에 사형판결을 내릴 수 밖에 없
50년 전의 조계종은 돈 쓰는 부정 선거판이 없었다. 무소유속에 청정한 수행자를 확인한 후 종정, 총무원장, 원로의장, 원로의원, 본사주지, 종회의원, 동대이사장 등을 추대하거나 임명하였다. 따라서 조계종은 감투 때문에 승려들이 분쟁할 일이 없었다. 청정한 수행자가 존중받는 시대였다. 은처승(隱妻僧)이 돈 싸들고 감투욕심을 낼 수는 더욱 없었다. 조계종의 부처님의 계율속에 불교정의가 강물처럼 흘렀다. 일제 36년의 한국불교는 공식적으로 일본식으로 대처승(帶妻僧)이 되어야 불교 감투를 쓸 수 있었다. 계행이 청정한 한국 전통불교의 비구승은 감투를 쓸 수 없었다. 불교종단의 감투를 쓰려면 “일제불교를 본 받는다” 취지에서 대처승이 되어야 한다는 조선 총독부의 지엄한 지침이 있었다. 예컨대 일제 시 시승(詩僧)이요, 지금은 독립운동가로 대우를 받는 유명한 한용운(韓龍雲)도 부인을 둘이나 거느리는 대처승이었다. 큰 부인에게는 아들을, 나이 젊은 둘째 부인에게는 딸을 낳게 하였다. 한용운의 처신은 이상했다. 조선독립운동을 하면서 다른 면은 자신의 저술인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에서는 조선총독에게 상소(上疏)같은 건의서를 올렸다. 건의서에서 한용운은 통감부령(統監
2016년에 시작된 촛불 민심의 결과는 문재인 대통령을 탄생 시켰다.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던 촛붛 민심의 대부분은 한국사회의 변혁을 갈망하는 민중들이었다. 민중들의 갈망은 무엇이었을까. 민중들이 신명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었다. 작금의 文대통령은 민중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변혁의 정치를 하고 있을까? 아니다. 부지기수의 많은 민중들의 여론은 文대통령이 펼치고 있는 정치에 실망과 의혹과 개탄을 토해내고 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소리인 것이다. 한국의 수도의 한복판 광화문 광장과 전국 주요 도시, 저 흑산도에서 까지 민중의 횃불 봉기같은 촛불시위는 무엇에 저항하며 변혁을 바라며 일어난 것일까. 그것은 한국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으로 오직 국민들을 위한 정치, 특히 경제난에 수심이 가득한 민중들의 삶에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하지 않고, 너무도 개인적이고 동패들만의 부정한 검은 돈 먹기의 주역 노릇을 하였기에 민중들은 실망을 넘어서 분노가 충천하듯 하여 한국사에 유일하게 임기중의 대통령을 축출한 것이었다. 그 촛불시위를 촛불혁명이라고 찬사를 보내고, 그들의 여망속에 오매불망 대통령의 감투를 원하며 거리 투쟁하던 문재인은 대통령의 소원을 아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