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은 오래전부터 국민보호를 위한 대테러방지법 제정이 시급하고, 전문적인 테러방지를 담당하는 조직기구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왔다. 그동안 간헐적으로 테러를 자행해오는 집단은 오직 한 곳 북의 김씨 왕조였다. 그러나 이제 한국에 테러를 하겠다고 선언한 집단으로 국제 테러단체인 IS가 등장했다. 따라서 한국은 북과 IS집단에 테러를 당할 수 있는 위기에 처해있다. 주지(周知)하다시피, 북은 해방직후부터 부지기수(不知其數)로 비밀리에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군경(軍警)과, 무고한 국민에게 기습적으로 학살의 테러를 간헐적으로 자행오고 있다. 예를 하나만 든다면, 1968년 1월 21일 야음을 타고, 북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124군 부대원 31명이 무장하여 당시 대한민국 박정희 대통령을 기습 살해하려고 청와대를 목적으로 침투해왔었다. 124 부대원이 청와대에 진입하기 전에 이를 발견한 군경은 교전 끝에 희생되면서 124 부대원을 섬멸한 것은 온 국민이 주지(周知)하는 사례이다. 따라서 북은 대통령까지 테러를 통해 살해하려고 실행하려는 자들인데, 북에 의해 일반 국민들이 북으로의 납치와 살해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경찰 전문
아직 일본 공항에서 일본 경찰의 의해 체포된 전북 군산시(群山市)에 산다는 전모(全某=27)씨가 야스쿠니 신사(神祀)의 화장실을 폭파시키려 시도한 진범이 확실하다는 일본 경찰의 공식 발표는 없지만, 이 사건은 한-일 양국민들은 초미의 의혹과 논란의 화제가 되어 있다. 어떻게 남의 조상의 신사(神祀)에 폭파를 시도할 수 있느냐이다. 과연 전모씨는 왜 야스쿠니 신사의 화장실 폭파를 노린 것일까? 야스쿠니 신사를 폭파하기 위한 예행 연습인가, 아니면, 화장실에 폭파를 시도함으로써 한일간에 대중의 주목을 받기 위한 못난 영웅심인가? 첩보소설이나 추리소설을 조금이라도 애써 탐독했다면, 일본경찰의 용의자가 되고, 일본 산케이 신문등에 용의자 신세가 되지 않았을 것같은 전모씨의 어설픈 전략과 작전이라고 나는 생각하며, 다음에 열거한다. 첫째, 전모씨는 야스쿠니 신사 가까운 거리(5분거리)에 있는 호텔에서 자신의 손으로 숙박부(宿泊簿)를 적고, 호텔의 CCTV에 찍혀 최초의 흔적(痕迹)을 스스로 남긴 것이다. 둘째, 도처 거리에 설치된 일본 경찰의 CCTV에 찍혔다. 전모씨는 호텔방에서 나와 가방을 들고 야스쿠니 신사의 화장실을 찾아 가는 모습과, 야스쿠니 화장실에서 일보
아직도 18대 대선에 불복하는 제1 야당 대표가 쳐대는 구호와 북장구 소리에 고무되어서인지, 아니면 개인적 친북, 종북의 사상 탓인지, 한국의 일부 종교인들은 국민들을 향해 “박근혜를 처형하라!”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쳐 테러를 맹촉하듯 하고 있다. 심지어 속세를 떠났다는 승려의 복색을 한 여승은 청와대 정문 앞에 서서 “박근혜를 처형하라!” 국민들에게 맹촉(猛促)하는 사진이 인터넷에 전국적으로 유포되어 전국적으로 화제이다. 청와대 정문 앞에는 보초같은 경찰과 경호실의 요원이 “박근혜를 처형하라!”는 피켓을 들고 선동하는 여승을 보는 것은 물론, 정문을 오가는 각료들, 대통령 비서실, 경호실, 정보기관 등 요원들이 뻔히 문제의 여승과 피켓과 구호소리를 보고 들으면서도, 소 먼 산 보듯 처신할 뿐이다. “나를 처형하라는 소리가 아니면 좋다.” 아니면 “민주화 운동을 하는 것”으로 실실 웃으며 간과 하는 것인가?여승의 구호가 담긴 피켓의 의미를 분석해보면, “박근혜를 처형하라!”는 무서운 테러를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민주화된 선진국이 대통령 집무실의 정문 앞에서 대통령의 실명을 적어 처형하라는 주문과 선동을 할 수 있을까? 백악관 정문 앞에서 대통령 “
▲대통령을 "처형하라!"는 비구니 YS로 시작하는 문민 대통령들의 시절에, 상습 불법시위로 반정부 투쟁을 해온 자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민주화를 빙자한 “사상의 자유, 결사의 자유,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달라고 요구했었다. 문민 대통령들은 그 요구를 용인해주었다. 좌우포용의 중도정치를 하겠다고 표방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좌파의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왔나? 이제 청와대 정문 앞에서 “박근혜를 처형하라!”는 구호를 청와대 앞에서 외치고 국민선동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박대통령을 향한 언어의 테러이고, 진짜 테러를 하자고 국민선동을 하는 것 아닌가. 승려가 할 정치인가? 국가원수인 “박근혜를 처형하라!”의 구호와 피켓을 들고 선동을 해보이는 사진 2장은 그토록 피흘려 쟁취한 민주화의 막장 “쇼”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한국인의 수치라고 나는 생각한다.더욱 기막힌 것은 대통령을 “처형하라!”의 쇼가 벌어지는 곳에는 입만 열면 민주화를 강변하는 제1 야당 대표와 동료 국회의원들 등이 처형을 맹촉하듯, 하는 풍경이다. 국회에서 여야 간에 민생을 위한 정치를 담당할 야당의 국회의원들이 기회만 있으면 불법시위와 폭력으로 경찰버스를 부수고, 방화하고,
남북전쟁의 서곡인 한국내 무정부 유혈폭동은 해방직후부터 북의 조종에 의해 벌어졌다. 부지기수(不知其數)의 남녀들의 세력은 대한민국 망치기에 동원되었고, 대한민국을 수호하려는 세력과의 유혈충돌로 모두 통곡의 고혼이 되었다. 현명한 국민이라면, 인민민주화를 위해, 민주화를 외치면서, 국민을 속여 유혈사태인 폭동은 일으키지 않았어야 했다. 그러나 북은 전면전을 벌이기 전에 항상 한국내 내부 폭동을 야기시키기 위해 공작금을 포함한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현명한 국민들은 북의 광수들과 남의 동패들이 해방 직후부터 대한민국에 벌여온 공작사를 불을 보듯 통투하고 있다고 나는 주장한다. 주장의 근거로서, 제주 4,3 반란사태, 여순반란 사태, 등 해방후 대한민국 내에서 벌어진 유혈사태의 반란사태를 분석해보면, 100% 북에 의한 조종으로 드러났다. 반란사태가 끝나면, 언제나 남쪽의 반란자의 수뇌들은 북에서 온 자들과 북으로 귀환한 것이 근거이다. 5,18 때 맹활약을 했던 자도 북으로 돌아갔다. 북은 해방직후부터 일부 세력이 있는 노동자들을 앞세워 대한민국의 철도 등 기간산업에 총파업 등 대한민국 망치기에 선봉 노릇을 하게 했다. 아직도 그 사상을 계승하는 작금
자유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이 나날히 무정부 상태의 불법시위자들의 폭동같은 대정부투쟁의 불법시위 때문에, 헌법을 준수해야 할 나라가 망조로 들어섰다고 통탄, 개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일부 국민은 군이 나서야 한다는 살벌한 주장도 있다. 군이 나서지 않는 한 문민정부 20년간 국고지원으로 양성된 좌파척결은 난망하다는 것이다. 폭도같은 불법시위자들이 상습적으로 폭난(暴亂)을 일으키며 외쳐대는 정치 구호는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이라고 주장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대한민국 헌법을 유린하는 불법시위는 자유민주화가 아닌 北의 “인민민주화” 운동이라고 판정한지 지 오래이다.나는 통탄하고 개탄한다. 6,25 김일성의 남침으로 3백만여 명이 죽고, 아직도 산하에 국군의 유골을 찾고 있는데, 역사의 교훈을 망각하고, 왜 일부 대한민국 국민은 왜 6,25 직전의 정치상황으로 만드는 정치를 하는 것인가. 자유대한의 헌법을 유린하는 무정부 상태의 불법시위의 주원인자는 누구인가? 그것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민주화를 실천한다는 문민 대통령들 탓이다. YS, DJ,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들이 반공을 국시로 하는 대한민국 정치를 버리고, 좌우포용의 정치를 하며, 국민혈세로 북을 추종하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작금에 조계종에서 일부 승려들이 온갖 억지 명분을 붙여 매번 반정부 불법시위의 수괴인 민노총 대표를 숨겨주고 우대하며 반정부에 나서고, 대정부 우롱의 발언을 해대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했을까? 민주화를 빙자한 수수방관했을까, 아니면 추상같이 법집행을 했을까? 이승만 전 대통령은 조계종 불교에 어떠한 인연과 지대한 공헌을 했는가? 李대통령은 불교정화를 위해 8차례나 유시를 내렸다. 한국 역사에 전무후무(前無後無)할 일이다. 단초는 이렇다.어느날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한 미국 고위 정치인과 이익홍 내무장관, 갈홍기 공보실장, 최헌걸 경기도 지사를 대동하여 정릉의 고찰인 경국사를 방문했다. 李대통령은 미국 정치인에게 한국 승려는 결혼하지 않은 독신승 즉 비구승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의 눈앞에는 괴이한 풍경이 들어왔다. 사찰의 우물가에서 아기의 기저귀를 빨고 있는 젊은 여인을 보고, 빨랫줄에 널린 여자의 내복(팬티 등), 아기의 기저귀들이 걸려 잇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놀라 하문하는 이승만 대통령에 수행비서는 승려들이 일제 불교인 대처승들이기 때문에 대처승 아내의 세탁물이라는 보고를 올렸다
▲98년 12월 23일 새벽 4시 20분, DJ의 공권력인 경찰들이 조계종 총무원을 폭력으로 장악하는 모습 17백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불교가 나날히 신도수가 줄어드는 이유는, 타종교의 교세가 불교잠식이 아닌 내부의 일부 승려들 탓이라는 것을 두고, 불교계는 비유하여 “사자를 죽이는 것은 사자 몸속의 사자신충(獅子身蟲)”이라는 말로 전해온다. 과연 그런가? 신라, 고려 시절은 불교가 국교(國敎)로서 대우를 받았지만, 고려 말의 불교가 망조가 든 것은 일부 승려들이 매불(賣佛), 선량한 신도들을 현혹하고 기만하여 부를 축적하고, 당시 권부의 시녀로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여 부패한 돈을 챙기고, 나라와 민중을 외면한 인과응보로서 이조(李朝)에 접어들면서 국교에서 내쫓긴 것이다. 승려가 얼마나 미웠으면 이조의 태종(太宗) 이방원은 왕명(王命)으로 승려의 도성출입금지를 제정했고, 그 아들 세종도 승려의 도성출입금지를 시켰다. 태종의 눈에서 볼 때, 불교는 신라, 고려를 거쳐 타락한 종교였고, 새로운 나라인 이조를 운영하는 데,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파악한 것이니 태종은 민심에서 불교가 떠난 것을 통찰한 것이다. 인과응보(因果應報)는 불교의 핵심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