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송
次第三能變 差別有六種
차제삼능변 차별유육종
了境爲性相 善不善俱非
료경위성상 선부선구비
다음 제3 능변식(第三能變)은 여섯 가지 종류로 구별(差別)되어 있고,
경계(境界)를 요별(了別)하는 것으로 성상(性相)을 삼으며,
선(善)과 불선(不善) 그리고 선도 아니고 불선도 아닌 것(非善非不善)을
모두 함께 한다.
次第三能變 差別有六種
차제삼능변 차별유육종
다음, 제3 능변식(能變識)은
제1 이숙(異熟)능변식 (제8식), 제2 사량(思量)능변식 (제7식),
다음으로 제3 육종(六種)능변식 (제1~6식)을 논한다고 제목을 들었다.
이 제3 능변식에 차별이 있는 육종(六種)이 있다는 것은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 (眼識, 耳識, 鼻識, 舌識, 身識, 意識) 등
여섯 가지가 각기 다른 성능을 가지고 있어 차별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 의근 (眼根, 耳根, 鼻根, 舌根, 身根, 意根)을 포함해서
육종(六種)이라 했다고 볼 수도 있다.
안근(眼根)이란 눈이고,
안식(眼識)이란 눈의 의식인데,
눈의 의식이 작용해도 눈이 멀면 사물을 인식하지 못하고,
눈은 작용한다 해도 안식이 작용하지 않으면 사물을 의식할 수 없는 관계에 있으므로
각기 차별적으로 기능하는 여섯 가지의 쌍(雙)을 육종(六種)이라 했다고 해석한다.
了境爲性相 요경위성상
경계(境界)를 요별(了別)하는 것을 성(性)과 상(相)으로 삼는다.
앞에서 오변행심소(五遍行心所),
촉(觸), 작의(作意), 수(受), 상(想), 사(思)에 관해 공부했다.
오변행(五遍行)은 6식과 7식의 작용인데 이 작용들이
제8 아뢰야식에 의지하고 또 반연하므로 오변행심소라 한다고 했다.
6식은 또 제7 말나식에 영향을 받아 작용하기도 하고 독자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경계(境界)에는 육경(六境)이 있는데
그들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다.
제1 눈과 안식은 빛이나 사물을 요별(了別)하고,
제2 귀와 이식(耳識)은 소리를 분별하고,
제3 코와 비식은 냄새를,
제4 혀와 설식은 맛을,
제5 몸과 신식은 촉감 등을 요별(了別)하고,
제6 의식(意識)은 제8과 7식에 의지하여 앞의 5식이 사물과 접촉(觸)하는 작용을 뒷받침하고,
그 접촉에 반응하고, 좋다 나쁘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감정적인 느낌을 일으키고,
그에 대해 생각하고, 나에게 어떤 영향이 있는가, 어떤 이익이 있고 해가 있는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등에 대해 사량(思量)하는 성질이 ‘경계를 요별하는 성(性)’이고,
이들에 대해 과거의 경험으로 이루어진 제6식의 상(相)이 경계를 요별 하는 상(相)이다.
예를 들면, 김치 맛은 과거에 먹어본 김치 맛이 상이 되어
지금 보고 먹는 김치 맛을 분별하는 마음이 경계를 요별 하는 상(相)이다.
어제 썸어타임이 시작되었는데 그 전에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의 상(相)과 저녁에 잠자던 시간의 상에 혼란이 와 당분간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이것이 경계를 요별 하는 이 상(相)이 바뀌는 시간이다.
상(相)은 말과 행동으로 행위를 일으키는 바로 직전의 마음의 모습이기에
행위(行爲)의 모습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확하게는 마음의 모습이다.
그 마음의 모습이 마음속에 있다가 외부의 경계를 만나면 상(相)에서 행위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행위에서 그 사람의 상(相)을 볼 수 있고, 상(相)에서 성(性)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의 진행과정을 요경위성상(了境爲性相)이라 했다.
善不善俱非 선불선구비
경계를 요별한다는 것은 경계가 좋다, 나쁘다,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고 분별을 일으키는 마음작용이다.
그러나 이 6식의 성질과 행하는 모습은
과거에 있었던 경험을 저장한 제8식의 업식(業識)과,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맛보면 항상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제7식의 상(相)에 의지해 경계를 요별 하는
성상(性相)이 형성됨으로
6식이 보고 듣고 맛보는 것은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그리고 맛보는 것이 사물,
즉 색성향미촉법이 있는 그대로 안이비설신의가 맛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제8 업식에 저장되어 있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제7식의 상(相)이 어떠냐에 따라
그 대상, 색성향미촉법이 변질되어 느끼는데,
우리의 의식은 이 변질되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사물이 있는 그대로 자기가 보고 듣고 느낀다고 생각하는 모순을 끝없이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제8 아뢰야식에 저장된 업식(業識)과
제7식의 상(相)에 의한
6식의 경계(境界)를 요별(了別)하는 성상(性相)은 참된 진(眞)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무엇이 선(善)이고, 불선(不善)이며 불선비불선(不善非不善)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각자의 제8식에 저장된 경험과 제7식의 자기중심적인 사량에 영향을 받아
제6식이 대상을 요별하고 행하는 선(善), 불선(不善), 불선비불선(不善非不善)이므로
갑(甲)이라는 사람의 선(善), 불선(不善)이
을(乙)이라는 사람에게는 불선비불선(不善非不善)인 무기(無記)가 될 수도 있으므로
참된 선(善), 불선(不善), 무기(無記)하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구에서 뜻하는 선(善), 불선(不善), 무기(無記)는
사람마다 자기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선(善), 불선(不善), 무기(無記)라고 해석된다.
글자의 뜻으로는
착한 일,
착하지 못한 일,
착하지도 않고 착하지 않은 것도 아닌 무기이지만,
옳고,
그르고,
무기,
순역(順逆) 무기,
보시 탐욕 무기,
좋고 나쁘고 무기 등과 같은
상대적인 관계를 설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우리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행하는
선(善), 불선(不善), 무기(無記)는 제8식에 소장된 업식(業識)과
제7식의 성상(性相)에 의지해 제6식이 그의 대상을 요별 해서 행하는 행위의 결과가
다시 제8식에 저장됨으로 새로운 종자가 제8식에 심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악한 일보다 착한 일을 하려고 노력함으로서
제8식에 착한 씨앗이 점점 더 많이 심어지게 된다.
이 좋은 씨앗들이 제8식에 많이 저장되면 될수록 좋은
인(因)이 좋은 연(緣)을 만나 복(福) 받게 되는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게 된다.
이 가능성은 금생에서 다음 생으로 이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