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송
由諸業習氣 二取習氣俱 유
제업습기 이취습기구
前異熟旣盡 復生餘異熟
전이숙기진 부생여이숙
모든 업(業)의 습기(習氣)로 말미암아 2취(二取)의 습기를 함께한다.
전이숙(前異熟)이 이미 다하고 나면 다시 남은 이숙(異熟)이 생기(生起)한다.
제17송에서 시제식전변(是諸識轉變) 분별소분별(分別所分別),
이 모든 식이 분별하는자와 분별되는자를 움직여 변하게 한다.
그리고,
제18송에서 유일체종식(由一切種識) 여시여시변(如是如是變)
이전전력고(以展轉力故) 피피분별생(彼彼分別生),
즉 일체종식이 이와 같이 여러 가지로 변화를 일으킴으로
전전력(展轉力)이 가(加)해지고,
그 전전력으로 인하여 여러 가지 분별이 생긴다고 했다.
제19송에서 유제업습기(由諸業習氣) 이취습기구(二取習氣俱)
모든 업의 습기(習氣)로 말미암아 2가지 취하는 습기가 함께 한다.
모든 업의 습기라는 것은 같은 동작을 반복함에서 일어나는 기운인데,
곧 제18송의 전전력(展轉力)을 기(氣)로 표현하고,
피피분별생(彼彼分別生), 여러 가지로 분별하는 마음이 선택한 행위의 반복이니
습(習)으로 표현된 것이다.
예를 들면 여러 가지로 분별하는 마음이
담배를 선호하여 담배를 반복해서 피우다보면 담배 피우는 습관이 붙고,
습관의 기운도 함께 증가하게 되는데,
그 습관에는 담배에 집착하는 능취자(能取者)와
그 집착의 대상인 담배,
즉 소취자(所取者)가 함께 있다는 말씀이다.
즉 담배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마음 안에 이미 같이 있다는 말씀이 된다.
그 습관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습관의 기운도 점점 강해져
고치기 어려워지게 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반복되는 행위란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같이 보여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적은 일이라도
자주 반복하다보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면 그 자체의 세력을 형성한다는 것이 제업(諸業)의 습기(習氣)이다.
장난삼아 하던 노름이 노름꾼이 되어 가업을 망치게 되는 경우,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 등이
모두 제업(諸業)의 습기(習氣)에 해당되는 말씀이다.
또 이는 좋은 의미도 있다.
공부를 조금씩 하다보면 공부에 취미가 붙어 열심히 하게 되는 것이나,
처음에 긴가민가하고 절에 나왔다가 재미를 붙여 열심히 나오게 되는 경우
등도 모두 제업(諸業)의 습기(習氣)에 해당된다.
이러한 제업(諸業)의 습기(習氣)에는 두 가지 취(取)하는 바가 함께 일어나는데
하나는 능취(能取)이고,
다른 하나는 소취(所取)이다.
이를 이취습기구(二取習氣俱)라고 했다.
능(能)은 행을 하는 주체이고,
소(所)는 행의 대상인 객체이다.
능취는 특정한 일에 습기(習氣)가 상승작용을 일으켜 그에 집착하는 주체이고,
소취는 능(能)이 집착하는 대상이다.
예를 들면,
능취는 술에 집착하는 주체이고
소취는 집착의 대상인 술이다.
술을 집착하는 능취와 소취인 술은 함께 일어난다는 말이다.
테니스를 열심히 치는 사람의 경우
테니스 치는 습관이 든 기운이 있음으로 열심히 치게 된다.
이 사람은 테니스에 집착하는 자, 능취이고, 테니스는 소취인데
능취와 소취가 함께 작용한다는 뜻인데
소취인 테니스가 이미 능취인 마음과 함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제8 아뢰야식과 제7 말나식의 영향을 받으며
제6 의식이 여러 가지 일들을 나름대로 주체의식을 가지고
판단하고 행하다보면 그에게 독특한 습성(習性)이 생기게 된다.
이 습성이 신구의(身口意) 삼업의 행위로서 반복되는 가운데 업의 습관적인
기운을 형성하게 된다.
이것을 제업습기(諸業習氣)라 하는데,
아뢰야식에서 어떤 습관이 습기로서 작용될 때
이를 제8식에 훈습된 종자 혹은 종자식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심어진 종자 혹은 업의 습기는 이미 능소(能所),
행위자와 행위의 대상,
나와 나의 대상으로서의 너,
너와 너의 대상으로서의 나,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자로서의 나,
환경의 영향을 받는 자로서의 나 등으로 이원화(二元化)된 습기가 모두 함께
종자식에 있게 된다는 말씀이 이취습기구(二取習氣俱)이다.
그대는 멀리 있지만 사실은 내 마음 속에 이미 있다는 말씀이다.
원래는 이원화(二元化)되어 있지 않고 능소(能所)가 없는 하나로 되어 있었는데
사람들의 탐욕에 의한 업의 습기가
취하고자 하는 자와 취함을 당하는 자로 이원화되면서
능취(能取)와 소취(所取)로 나누어져
제8식에 능취와 소취의 습기가 함께 저장되어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어떤 사람의 제8식에 저장된 능취의 습기(習氣)가
소취의 습기보다 강한 사람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 환경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고,
능취보다 소취의 습기가 강한 사람은 환경을 개척하기보다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능소의 관계를 이해하고 오별경(五別境)을 수행하면
환경을 극복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게 된다.
다툼은 결국 자기 마음이 자기 마음과의 다툼이라는 말씀이다.
전이숙기진(前異熟旣盡) 부생여이숙(復生餘異熟)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제8식에 저장된 앞의 종자가
제6 의식의 활동에 의해 연(緣)을 만나면 발아(發芽)하여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을 이숙(異熟)이라 하는데
이 이숙이 다하면 나머지 종자가 또 연을 만나 발아하여 이숙 한다.
이 때, 종자는 인(因)이 되고
이숙(異熟)은 과(果)가 되니 인과가 반복되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 인과의 반복을 우리는 윤회(輪回)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곧 생(生)과 사(死)의 반복이다.
그리고 또 전(前) 종자가 연을 만나 발아하여 이숙을 하면
새로운 종자의 세력이 처음보다 더 증가 되고,
다음 종자가 연을 만나 발아하여 이숙하면
그 새로운 종자의 세력은 더욱 확장된다.
종자가 악종(惡種)이면 악종이 발아하여
이숙할 때마다 더욱 그 세력이 강해시고,
선종(善種)이면 그와 반대로 선의 인과가 반복되어
선의 세력이 점점 확장되는 법이니
모든 불자들이 오별경(五別境) 수행을 열심히 할 것을 권장한다.
그러나 오별경 수행으로 현재 악업의 종자가 선업의 종자로 이숙하면,
제8 아뢰야식에 그 나머지 악업의 종자가 선업의 종자로 이숙하게 된다.
이 악업이 선업으로 이숙하는 행이 반복되면서
제8식에 남은 악업의 종자가 필경에 다하게 됨을 시사한다.
이러한 인과의 원리로 선인(善因) 선과(善果)를 반복하여
그 선(善)의 세력을 확대해 나아가 악(惡)의 종자가 다하고,
나와 이웃이 모두 함께 선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